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去卑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과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남[[흉노]]족의 일원으로 성은 난제(欒提). [[강거#s-2|강거]]의 동생. 조카로는 [[어부라]]와 [[호주천]]이 있다. == 생애 == 188년에는 형인 강거가 반란으로 살해당하면서 그 이후에는 수복골도후, 어부라, 호주천 등이 차례로 선우 자리에 올랐는데, 195년에 [[삼보의 난]] 때 우현왕으로 있던 거비는 [[동승]]과 [[양봉(삼국지)|양봉]]의 요청으로 [[이락]], [[한섬]], [[호재]]와 함께 황제 호위군에 참가해서 이각을 공격해 수천 명의 수급을 벤다. 그 후 호재, 양봉, 한섬과 함께 뒤에서 어가를 호위하며 갔지만 이번에는 이각군에 대패한다. 216년 7월에 호주천이 그의 명왕을 데리고 오면서 조조에게 항복하고 업에 자리잡아 살면서 빈객의 예우를 받았는데, 이 때 호주천이 우현왕 거비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나라를 통치하게 한다. 그 후 병주에서 [[유표#s-2|유표]]가 흉노를 합병할 때 [[등애]]가 올린 상소에서 언급된다. {{|거비는 이전의 조대(무제 시대)에서 공적이 역력했지만, 그의 자손은 사업을 이을 수 없었으므로 그의 자손들에게 고귀한 칭호를 더해 주어 안문에 거주하도록 하십시오. 흉노의 나라를 분리해 세력을 약하게 하고, 옛날의 공훈에 대해서 추적해 기록하는 것, 이것이 변방을 제어하는 장기간의 계책입니다.|}} [[서진]] 시기에 여러 차례 변경에 침입했다가 [[위관#s-3|위관]]이 계략을 통해 [[탁발부]]와 이간시키자 거비는 서진에 귀부했다. == 관련 기록 논란 == 195년에 황제를 도울 때 효헌황제기에는 좌현왕으로 되어있지만 강거가 죽은 후 좌현왕은 [[유표#s-2|유표]]였고 이 때의 거비는 [[자치통감]]에서는 이를 우현왕으로 기록했다. 난제의 경우도 자치통감에서는 195년에는 우현왕 거비라고 나오고 216년에는 난제거비라고 나오는데, 이 난제는 흉노 선우의 성으로 앞에 우현왕 때는 안 붙인 것 뿐이다. == 미디어 믹스 == [[삼국지 6]]에 등장한 이후 나오지 않는다. || [[파일:attachment/sam6_geobi.jpg]] || || [[삼국지 6]] 일러스트 || [[분류:흉노]] 거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