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static.goal.com/103900/103914_heroa.jpg?width=600 ||||<#0000ff> '''{{{#ffffff FC 샬케 04 II }}}''' || ||||<#BCD4E6> {{{#000000 게랄드 아사모아 (Gerald Asamoah)}}} || || 생년월일 || [[1978년]] [[10월 3일]] || || 국적 || [[독일]] || || 출신지 || [[가나]], 맘퐁 || || 포지션 || 공격수 || || 키 || 180cm || || 프로 입단 || 1996년 [[하노버 96]] 입단 || || 소속팀 || [[하노버 96]](1996~1999) [br] [[FC 샬케 04]](1999~2010) [br] [[FC St.파울리]](2010~2011) [br] [[SpVgg 그로이터 퓌르트]](2012~2013) [br] [[샬케 04]] II (2013~2015)[* 2015년 11월 25일 은퇴 선언.]|| || 국가대표 || 43경기 6골 || [목차] = 개요 = '''축구계의 인간 승리의 표본''' [[가나]] 태생의 [[독일]]로 '''[[귀화]]'''한 [[축구]] 선수. [[독일]]의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에서 공격수로 뛰고 있다. 흑인 특유의 유연한 몸놀림과 개인기는 물론 골 결정력도 갖추었으며, 포스트플레이에 장점을 지니고 있다. [[난치병]]과 [[인종차별]]이라는 축구 선수로서 가장 극복하기 힘든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극복한 선수이며, 특히 흑인 선수로서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것은 인종의 벽을 허문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다. 물론 그만큼 많은 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2007년 8월 FC 샬케 04와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더비 경기에서 도르트문트의 [[로만 바이덴펠러]] 골키퍼가 아사모아에게 "검은 [[돼지]](schwarzes Schwein)"라는 인종차별 발언을 하며 3경기 출장 징계를 받은 바 있으며, 이외에도 독일 축구에서 인종차별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선수로 여겨진다.] = 클럽 경력 = == 어린 시절&하노버 96 == [[가나]]의 맘퐁 출생이며, 1990년 12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독일]]로 건너와 [[하노버 96]] 유스에 소속된 이래로 1996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1998년 오른쪽 심장과 왼쪽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비대증]] 증세가 발견되어 축구 경력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당연하게도 담당 [[의사]]는 '''당장 축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축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아사모아는 [[미국]]의 [[심장병]] 전문 의사를 찾아가 [[심장]] [[제세동기]]를 달았으며, '''불굴의 의지로 축구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 달 반에 한 번 꼴로 전문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하며, 생명의 위기를 여러 번 맞이해 아사모아가 뛰는 경기장에는 언제든지 돌발상황을 대비한 [[구급차]]가 준비되어있을 정도로 위험 천만한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 샬케 04 == 1999년 [[FC 샬케 04]]로 팀을 옮겼으며, 2000-01 시즌과 2001-02 시즌 [[DFB 포칼]] 우승, 2005년 [[DFB 리가포칼]] 우승에 기여했다. 2005-06 시즌 초반부에 무릎 부상을 입었으나, 놀라운 회복 속도를 보이며 2달 뒤인 11월 복귀하였다. 2006-07 시즌에는 9월 [[AS 낭시]]와의 [[UEFA컵]] 경기에서 왼쪽 [[하퇴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으며, 6개월 뒤인 2007년 4월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경기에서 복귀하였다. 2007-08 시즌에는 SV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05와의 DFB 포칼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기도 했으며, 2008년 1월 구단과의 계약을 2011년 1월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2009-10 시즌 저조한 활약을 보이며 리그에서 단 8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는 데 그쳤으며 시즌 종료 이후 1부 리그로 승격이 확정된 [[FC St.파울리]]와 2년 계약을 맺어 이적에 합의하였다 == 상 파울리 == 그러나 2010-11 시즌 시작 전 연습 경기 도중 [[허벅지]] 부상을 입어 개막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며, 9월 [[함부르크 SV]]와의 [[더비]] 경기에서 복귀해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1:1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후 2011년 2월에 다시 함부르크 SV와의 더비 경기를 치를 당시 활약했으며, 이번에는 결승골을 넣어 팀의 1:0 승리에 크게 공헌하며 1997년 이후 팀의 첫 더비 경기 승리를 견인했다. --본격 더비 경기의 사나이-- 하지만 시즌 종료 이후 팀이 최하위를 기록하며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자 계약이 만료되었으며, 아사모아는 친정팀인 FC 샬케 04로 복귀하기를 원했지만 무산되었다. 결국 무적 상태에서 6개월동안 올라프 톤 감독의 허가 하에 5부리그의 VfB 휠스에서 개인 훈련을 했으며, 우여곡절끝에 2012년 1월 독일 2부 리그의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에 입단했다. 2013년 7월 15일 [[샬케 04]]로 이적하였다. 2군 팀에서 선수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선수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2015년 11월 15일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2군 코치로 일한다고 한다. = 국가대표 경력 = [[독일]]에서 11년 동안 생활한 뒤 2001년 독일 [[시민권]]을 취득해 귀화에 성공했으며, 귀화한 직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독일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순수 [[흑인]] 선수'''가 되었다.[* 이전에도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흑인 선수는 몇 명 있었지만, 한 쪽 부모가 독일인인 [[혼혈]] 선수였다. 양 쪽 부모가 모두 흑인 출신은 아사모아가 최초. 다만 이것도 독일에서 줄곧 자란 경우라 가능했으며, 아무 연고가 없는 선수들은 여전히 독일 국가대표팀 발탁이 불허된다.] 그 해 5월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이후 2002 FIFA 월드컵 직전에 허벅지 부상을 입었으나 결국 최종 엔트리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교체 투입되며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는 선수가 되었다. 그 뒤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해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 교채 투입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의 4강에 기여했으나, [[인종차별]] 문제로 그 해 10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네오 나치]]들은 "아사모아, 넌 독일인이 아니야"라는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닐 정도로 아사모아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며, 독일의 [[극우]] [[정당]]인 국가민주당(NDP) 또한 이민자 출신 독일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을 비하하는 데 한 몫한다.] = 수상경력 = 2015 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2015년 한해 국제사회의 이슈였던 난민문제를 비롯해 그동안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 여담 = [[파일:attachment/Ugly_Footballer.jpg]] 2006 FIFA 월드컵 직전에 한 [[웹사이트]]에서 실시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월드컵에 출전하는 가장 못생긴 축구 선수']]를 가리는 투표에서 1.76%의 지지(?)를 얻어 8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천수|1위]]에 신경쓰면 지는거다.-- 게랄드 아사모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