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동음이의어·다의어/ㄱ]] [목차] == 일반적인 의미 == * 景氣 : 경제적인 총체적 활동. * 京畿 : 한 나라의 중심부로 가까운 주위의 지방. * 競技 : 운동에서 규칙을 통해 겨루는 일. * 驚氣 : 어린아이가 경련을 일으키는 병의 총칭. == [[후한]] 말의 인물 == 耿紀 (? ~ 218) [[후한]] 말의 인물. 자는 계행(季行). 후한의 개국공신인 [[경엄]]의 동생인 [[경국]]의 증손자로 어려서부터 명성이 있었으며, 승상연을 지내다가 [[조조(삼국지)|조조]]가 그를 공경해 시중 겸 소부로 임명했다. 218년에 [[위황]], [[김의]], 태의령 [[길본]]과 그의 아들 [[길막#s-2|길막]], [[길목#s-2|길목]] 등과 함께 허창에서 조조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 [[왕필#s-1|왕필]]의 진영에 불을 질러 부상을 입혔으며, 왕필이 죽은 줄 알고 흩어졌다가 왕필과 전농중랑장 엄광의 공격을 받아 체포되어 내가 뜻을 살리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면서 끝내 아이 같은 것들 때문에 그르쳤다고 탄식하면서 참수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 암살을 위한 동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위황과 함께 김위를 찾아가 일부러 조조가 위왕에 오르면 높은 벼슬에 오른다고 그의 생각을 떠봤다. 결국 허창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하후돈]]의 군대에게 토벌되어 체포되자 "조아만아!, 내 살아서 너를 죽이지 못했으니 죽어서 무서운 귀신이 되어 도적을 치겠다"!"라고 외쳤으며, 형을 집행하는 망나니가 칼로 그 입을 쑤셔 피가 땅에 가득했지만 조조에 대한 욕설을 그치지 않다가 죽었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8]] 이 후로는 짤렸다. == [[춘추시대]] 말의 인물 == 慶忌 생몰년도 미상 춘추시대 요왕의 아들. 용맹이 뛰어나 각국에서 그를 등용하려고 할 정도이며, [[만인지적]]으로 짐승을 잡거나 손을 늘려 날아가는 새를 잡았다고 한다. 공자 광이 [[전제]]를 이용해 오왕 요를 죽이고 [[합려]]로 즉위하자 복수를 위해 위(衛)나라에서 군사를 준비했는데, 요리가 스스로 처자식을 죽이고 오른 합려와 [[오자서]]가 계략으로 요리를 역적으로 몰아 오른팔을 잘라 추방시켜 요리를 파견했다. 경기는 요리를 부하로 맞아들이다가 숙부인 개여, 촉용 등과 합류하기 위해 오나라의 국경 지대로 향했다. 장강을 건널 때 요리가 일부러 모자를 떨어뜨려서 줍는 척 했다가 요리에게 찔렸으며, 칼에 찔리고도 그 용력으로 여러 번 요리의 머리를 쳐박았다. 이에 군사들도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하루에 두 명의 용사가 죽을 수 없다면서 요리가 죽지 않도록 놓아줬다. 하지만 요리는 껄껄 웃으며 스스로 자결을 택했다. 훗날 [[조위]]의 [[조휴]]가 [[오]]나라 [[주방]]이 자기 머리카락까지 잘라가며 거짓 항복으로 속이자 [[가규]]가 이 고사를 언급했다. 그러나 조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주방의 계략에 넘어가 대패하고 만다. ==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 http://study.zumst.com/upload/00-I22-00-41-02/%EA%B3%A0%EB%A0%A4%EC%9D%98%EC%A7%80%EB%B0%A9%ED%96%89%EC%A0%95%EC%A0%9C%EB%8F%84.png 개경 근처의 지역. 한자는 京畿로 아래의 경기도와 같다. 이 쪽이 원조. 고려의 수도는 [[개성특급시|개성]]이었으므로 개성 주변을 포함하는 행정구역이었으며, 다만 아래의 경기도가 조선 [[팔도]] 중 하나로 쳤던 것과 달리 고려의 경기는 [[5도 양계]] 중의 하나는 아니어서 [[도(행정구역)]] 자가 붙지는 않았고(그래서 '경기도'가 아니라 '경기'다) 범위도 아래의 경기도보다 좁았다. 왜인지 고려시대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에서는 십중팔구 색깔을 달리해서 다른 [[5도 양계]]들과 구분은 해놓는데, 경기라는 이름이 안 적혀있어서 이게 고려시대의 경기인지 뭔지 학생들은 잘 모른다. 고려시대에는 수도 개성 외에도 [[서경]](西京, [[평양직할시|평양]]), [[동경]](東京, [[경주시|경주]]), [[남경]](南京, [[양주시|양주]])에도 각자 서경기, 남경기, 동경기가 있었다. 고려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지만 고려 말에는 경기의 범위가 상당히 확장되어서 다른 도들과 비슷한 크기만큼 커졌다. 완전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지금의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개성을 중심으로 [[황해북도|황해도 동쪽 절반]]과 [[경기북도|경기도 북쪽 절반]]이 경기였다. 고려가 망한 뒤에는 경기의 경, 즉 수도가 개성에서 남쪽의 [[한양]]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고려 경기는 해체되었다. == [[조선]]시대, [[대한민국]]의 지명 == 京畿道 조선시대의 수도 [[한양]] 주변을 아우르는 행정구역으로 잠시 [[23부제]]가 시행되었던 때를 제외하면 현대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인 [[경기도]] 문서 참조. [[분류:동명이인]] [[분류:한나라/인물]] [[분류:춘추전국시대/인물]][[분류:한국의 옛 행정구역]] 경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