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景湣王 (? ~ 기원전 228년)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의 [[위나라]] 제7대 군주. 재위 기간은 기원전 242 ~ 기원전 228년. 이름은 증(增). 태자 시절에 진(秦)나라의 인질로 있다가 기원전 247년에 [[신릉군]]이 하외에서 진나라를 격파하고 [[몽오]]를 쫓아버리자 [[장양왕]]이 증을 가두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이 증을 위해서 위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해 증을 가두게 되는 것은 [[공손희]]의 음모로 증을 환대해 위나라와 화의를 맺고 위나라가 제, 한나라 등에게 의심받도록 하라고 설득하자 장양왕이 증을 가두지 않았다. 그의 치세에는 진나라에게 여러 차례 영토를 빼앗겨 즉위 초인 기원전 243년에 산조, 연읍, 허읍, 옹구, 산양 등 30여 개의 성을 빼앗기고 기원전 242년에는 조가를 빼앗겨 수도를 야왕으로 옮겼다. 기원전 241년에는 급읍을 빼앗겼고 어떤 사람이 친정에 대비해 경계령을 내리고 10일 이내에 출병 준비를 끝내지 못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선포하라면서 그 사람이 초나라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는데, [[춘신군]]이 10일 이내에 수만 명의 군사를 위나라에 보내겠다고 하자 진나라에서 이 일을 알고 초, 위가 연합할 것을 우려해 사자를 보내서 위나라를 공격할 생각이 없으니 굳이 초나라의 군사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기원전 240년에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자 어떤 사람으로부터 진나라 내부에서 [[노애]], [[여불위]]의 파벌로 나눠진 상황에서 땅을 진나라에 바쳐 이를 노애의 공으로 삼아서 노애의 위치를 굳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기원전 239년에는 원읍, 포양, 연읍 등을 빼앗겼다. [[분류:춘추전국시대/군주]] 경민왕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