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군대 관련 정보]] 警察豫備隊. [목차] == 설명 ==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폭동 진압, 재해 상황시 구조 등 [[경찰]]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둔 집단을 말한다. 줄여서 [[경비대]]라고 표현한다. 경찰예비대, 경비대는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여러 제반 조건으로 정규군을 설치하기 어려울 때 [[준군사조직]]으로 치안 업무를 보조하는 부대를 두는 것이다. [[카리브해]]의 섬나라의 경우 정규군을 두기엔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해안경비대나 경찰 내 육상특수부대로 군의 업무를 갈음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공공부대]]도 넓은 의미에서 경찰예비대로 볼 수 있다. == [[대한민국]] == Constabulary Police Reserve. [[미군정]] 초기에 [[미국]]은 [[소련]]과 갈등을 피했다. 그때문에 점령한 [[한반도]] 남부에 정규군을 두는 대신에 기존에 존재하는 경찰[* 해방 직후에 23,000명 규모였다. 상당수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소속의 경찰이 그대로 인수되었다.]에게 기본적인 치안 업무를 맡겼고 유사시를 대비하여 1946년에 경찰예비대를 설치하였다. 이 집단이 [[조선경비대]]였고 해안 순찰 업무를 담당하는 [[조선해안경비대]]도 설치되었다. 그때문에 조선경비대 초기에는 군사훈련이 아닌 폭동진압훈련 등 경찰과 비슷한 훈련을 하였다. 다만 [[장교]]들이 [[일본군]]이나 [[만주군]] 등 군 출신인 인물이 많아 실제 훈련은 알음알음으로 군대식으로 했다.[* [[백선엽]] 같은 경우엔 각개전투 등 실질적인 보병 훈련을 하는 바람에 경찰 훈련을 하라는 미국 고문관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만 미국도 일단은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만든 것이라서 1947년에 소련과 관계가 틀어지자 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탈바꿈하는 걸 묵인했다. 1948년에 조선경비대는 [[대한민국 육군]]이 되었고 조선해안경비대는 [[대한민국 해군]]이 되었다. 초반의 장교계급은 아래와 같았다. *1946년 1월 15일-1946년 11월 30일: 참위-부위-정위-참령-부령-정령[* 장성 계급이 없었다. 한국군 첫 장성은 1947년 2월에 [[손원일]]과 [[송호성]]이 준장 진급하면서 첫 탄생.] *1946년 12월 1일 이후: [[소위]]-[[중위]]-[[대위]]-[[소령]]-[[중령]]-[[대령]]-[[준장]][* 최초의 준장 진급자는 손원일과 송호성이며 중국 중앙군 소장 출신인 [[김홍일]]은 [[특별임관]]으로 [[준장]]으로 임관했다. 김홍일은 [[건군기]]에 참여한 장교들 중에 유일하게 사단급 이상을 지휘해본 경력이 있는 [[군경력자]]였다. 다만 [[지휘관]]이 아닌 [[참모장]]으로 근무했다. [[북한군]]엔 소련군 사단 참모장 출신인 [[남일]]이 유일했다.]-[[소장(계급)|소장]]-[[중장]]-[[대장(계급)|대장]][* 최초의 대장 진급자는 1952년에 진급한 [[백선엽]]이었다. 1946년에 소위로 임관해서 6년 만에 대장 진급.] 계급의 경우 [[조선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의 [[부사관]] 호칭이 달랐다. 1962년에 가서야 합쳐진다. *조선경비대(1946년 1월 15일-1946년 11월 30일): 참교-부교-특무부교-정교-특무정교-대특무정교 *조선경비대(1946년 12월 1일 이후): 하사-2등중사-1등중사-2등상사-1등상사-특무상사 *조선해안경비대: 3등병조-2등병조-1등병조-병조장 == [[일본]] == *상위항목: [[자위대/역사]]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e/1st_Regiment_of_NPR.JPG/270px-1st_Regiment_of_NPR.JPG 警察予備隊. National Police Reserve.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 [[일본군]]은 해체되었다. 그러나 1947년부터 미국은 방침을 바꿔 일본에 군사조직을 재편성하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주일미군]]이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일본에 치안 공백이 생기자 [[더글러스 맥아더]]는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에게 치안을 담당할 부대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였고 1950년 7월 26일에 경찰예비대가 생겼다. 이들은 초기에는 경찰 업무를 보조하는 부대였으나 점차 군사업무도 맡게 되고 1952년에 [[보안대]]로 개편되고 1954년에 [[육상자위대]]가 된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1/National_Police_Reserve_Regional_units_%281951%29.svg/526px-National_Police_Reserve_Regional_units_%281951%29.svg.png?width=500 제1관구대는 관동 지방, 제2관구대는 [[홋카이도]]와 [[혼슈]] 동북부 일부, 제3관구대는 혼슈 서부와 [[시코쿠]], 제4관구대는 혼슈 일부와 [[규슈]], [[오키나와]] 등을 담당했으며 이런 분할은 육상자위대의 [[방면대]]로 이어진다. 상당히 조직이 급결성됐기 때문에 75,000명이 두 달만에 입대했다. 초기 인원은 일본군 장교 출신은 들어오지 못 하게 했고 [[사관생도]]까지만 허용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에서 파입된 인원들이 간부를 구성했다. 일단은 간부 임용하기가 여의치 않아서 미군 고문관이 훈련과 지휘를 맡고 입대자들은 전원 이등병(2등경사) 신분으로 훈련을 받았다. 간부 자원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이라고 적힌 완장을 차고 다른 훈련병들과 교육을 받다가 에타지마에 위치한 [[일본해군병학교]] 시설에 가서 간부 교육을 따로 받았다. 경찰예비대의 성격이 군으로 탈바꿈하자 군 업무에 익숙지 않은 간부 자원들은 대삽질을 반복했고 [[한국전쟁]]에서 [[군경력자]] 출신 [[지휘관]]들이 잘 싸우자 미국은 생각을 바꿔 [[좌관급 장교]]까지 경찰예비대에 입대를 허용한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4/Military_exercise_of_NPR1.JPG/300px-Military_exercise_of_NPR1.JPG 훈련받는 경비대원들. === 계급 === http://www.asaho.com/jpn/img/2013/0121/17.jpg * 경찰감(警察監) - [[중장]] * 경찰감보(警察監補) - [[소장(계급)|소장]] * 1등경찰정(1等警察正) - [[대령]] * 2등경찰정(2等警察正) - [[중령]] * 3등경찰정(3等警察正) - [[소령]] * 1등경찰사(1等警察士) - [[대위]] * 2등경찰사(2等警察士) - [[중위]] * 3등경찰사(3等警察士) - [[소위]] * 1등경찰사보(1等警察士補) - [[상사]] * 2등경찰사보(2等警察士補) - [[중사]] * 3등경찰사보(3等警察士補) - [[하사]] * 경사장(警査長)陸士長 - [[상등병|상병]] * 1등경사(1等警査) - [[일등병|일병]] * 2등경사(2等警査) - [[이등병|이병]] 경찰예비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