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고사성어]] [목차] ||||||||||||||<:><width=400><table bordercolor=black><bgcolor=black>'''[[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width=90><:> {{{+5 '''鷄'''}}} ||<width=90><:> {{{+5 '''卵'''}}} ||<width=90><:> {{{+5 '''有'''}}} ||<width=90><:> {{{+5 '''骨'''}}} || ||<:> 닭 계 ||<:> 알 란 ||<:> --있을-- 유 ||<:> --뼈-- 골[* '있을 유'와 더불어 뜻이 취소선 쳐진 이유는 후술] || == 개요 == 일이 공교롭게 틀어짐을 뜻하는 고사성어. '계란이 곯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곯다'의 [[가차|음을 그대로 따서]] '골(骨, 뼈 골)'자를 쓴 것인데, 이것때문에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원뜻은 '곯았다'는 뜻이니 주의하자. 여담으로 '뼈가 있는 계란' 즉 [[곤계란]]은 예로부터 식재료로도 약재로도 가치가 있었다(...) == 유래 == 출전은 《송남잡지(松南雜識)》이다. [[조선]] [[세종대왕]]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의 집은 장마철에는 비가 새고 관복도 한 벌로 빨아 입을 정도로 어질고 검소한 생활을 한 [[황희]]에게 세종대왕은 그를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다가 묘안을 얻은 왕은 "내일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었을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문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다 사서 황 정승에게 주겠노라"라고 했다. 헌데 그 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몰아친 [[폭풍우]]가 종일토록 멈추지 않아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가 한 명도 없었다가 --들고간 모든 물건을 팔 수 있으니 굉장한 기회였을텐데-- 다 어두워져 문을 닫으려 할 때 무슨 까닭인지 한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왕은 약속대로 이 달걀을 사서 황희에게 주었는데 황희가 달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삶아 먹으려고 하자 달걀이 모두 곯아서 한 알도 먹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는 야사에서 기반한 것이고,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대왕이 그런 방식으로 도왔다는 말이 없는데다 실제 황희는 이 정도로 청렴하지는 않았으므로 황희에 대한 민중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여기면 된다. 그 외에도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도 ‘계란개골(鷄卵皆骨)[* 계란이 모두(皆) 곯았다(骨)는 뜻]’이라 해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종대왕이 고려왕으로, 황희가 강일용(康日用)이란 사람으로 바뀐 것 외에 줄거리는 똑같다. == 구전설화 == 이와 관련한 구전설화도 전해 온다. 황희는 살림이 곤궁하나 재주가 무궁무진해서 하루는 부인이 “그렇게 재주가 많은 양반이 왜 굶고 사느냐?”고 따져 묻자 “그렇게 먹는 것이 원이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며 부적을 써서 사방으로 던졌다. 그러자 오곡이 들어와서 마당에 쌓였다. 부인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곳간으로 퍼 들이자 황희는 다시 부적을 써서 곡식을 날려보내고 말았다. 부인이 통곡을 하며 원망하자 황희는 다시 부적을 써서 계란 열 개를 들어오게 했다. 부인이 다시 없어지기 전에 얼른 먹으려고 삶아 껍질을 까자 그 속은 이미 병아리가 되려다가 죽은 것으로 모두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황희는 “그것 보라.”며, “당신이나 나나 안 되는 사람은 계란에도 유골이라.” 했다. == 비슷한 표현 == 관련 있는 [[속담]]으로는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밀가루 장사를 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를 하면 비가 온다.' 등이 있다. [[분류:고사성어]] 계란유골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