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 Cornelius [[이탈리아어]]: Cornelio [[영어]]: Pope Cornelius ||||||||||||<-5><:><table align=center> [[역대 교황]] || ||||||||||||<-5><:> http://www.adorazioneeucaristica.it/Papa/21Cornelio2.gif?width=276&height=268 || || 20대 [[파비아노|성 파비아노]] ||←|| 21대 성 고르넬리오 ||→|| 22대 [[루치오 1세|성 루치오 1세]] || * 생몰년: ? ~ 253년 6월 * 재위기간: 251년 3월 또는 4월 ~ 253년 6월 로마 황제 [[데키우스]]는 황제 숭배 사상을 강요하였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전임 교황이었던 [[파비아노|성 파비아노]]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여 순교하였고,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이어졌다. [[데키우스]]는 교황에 선출 되지 않으면 기독교가 쇠퇴할거라 생각했기에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약 14개월간 교황 자리가 공석이 된다. 그러나 [[데키우스]]가 이민족과의 전투로 로마를 떠나야 했고, 이 시기에 선출된 교황이 [[고르넬리오|성 고르넬리오]]였다. 어렵게 교황이 선출 되었지만 고르넬리오는 교회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가 계속 이어졌고, 안으로는 대립 교황인 노바시아노[* [[데키우스]] 치세에 살아 남기 위해 황제 숭배를 하여 배교한 기독교인이 차후 회개할 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두고 대립하였다.][* 노바시아노는 배교자가 다시 교회에 입회할려면 재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일파들은 고해성사만 하면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와의 싸움이 이어졌다. 한편 전쟁에 나갔던 [[데키우스]]는 서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는데 그 뒤를 이은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역시 기독교 박해를 이어 갔으며, 결국 [[고르넬리오|성 고르넬리오]]는 치비타베키아로 유배 보내져 그곳에서 선종했다. 사후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9월 16일이다. [[분류:성인(기독교)]] [[분류:교황]] 고르넬리오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