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사건 사고 관련 정보]] [include(틀:사건사고)] [[1963년]] [[10월 19일]], [[한국]]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 피해자와 범인이 모두 군 관련 인물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고재봉 상병이 박 중령의 [[관사]]에서 여러가지 일을 끝낸 후 서재에서 나오다가 [[고기]] 한 근을 훔쳐 들고 나왔는데, 이것이 [[가정부]]에게 발각된 것에서 시작되었다. 가정부가 어느 작은 물건을 들고 나온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고, 고재봉은 자신 옆에 있던 [[도끼]]로 가정부를 위협하였다. 실제로 가정부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고재봉은 이 때문에 살인미수로 징역 7개월형을 받고 [[육군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고 상병은 이 사건으로 출소하면 박 중령을 죽여버리겠다며 이를 갈았지만, 그 사이에 박 중령 가족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고, 박 중령이 있던 관사에는 이득주 중령 가족이 살게 되었다. 그런데 고 상병은 이것을 모르고 오로지 박 중령에 대한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박 중령이 아닌 이득주 중령과 그의 부인인 김재옥 교사[* [[한국전쟁]] 초기 [[동락리 전투]]에서 열세였던 국군에게 북한군의 동향을 알려 주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소위 였던 이득주 중령과 여기서 연이 닿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등의 일가족 5명을 도끼로 살해하였다.[* 원래 6명의 일가였으나 큰 아들은 당시 친적집에 있어서 참변을 면하였다.] 이후 고재봉은 귀금속 등을 훔쳐 달아나다가 서울에서 한 상인의 신고로 검거되었고, 1963년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 선고 다음해인 1964년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유명한 사건이라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서인지 30년 가까이 지나서 어느 중학교 교감선생이 퇴임식때 "도끼 그만둡니다."라고 말한 실제 사례가 있다.그 선생 이름이 바로 고재봉이라서 이 사건과 도끼가 얽매여서 학교에서 별명이 도끼선생이었다고(...) 고재봉에 대하여 다룬 박삼중 스님의 책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겐 죄가 되어 죽습니다> 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다뤘는데 고재봉은 60년대 당시 후진국이던 상황에서 가난하게 자라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라왔던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온 식구가 살해당했을 박중령은 이 사건에 기겁하고 마음고생하다가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예편해 군직에서 물러났다는 후일담도 나왔었다. [[분류:살인사건]]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사건사고 (원본 보기) 고재봉 살인 사건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