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www.zakzak.co.jp/sports/baseball/images/20110704/bbl1107041137000-p2.jpg 近藤 和彦(1936.3.2~2002.6.10) [[일본프로야구]] 선수, 지도자, 해설가. 이른바 '''텐빙(저울) 타법''' 이란 특이한 타격폼으로 이름을 날렸다. 좌투좌타 이며 현역 시절 포지션은 [[1루수]]와 [[외야수]]. [[교토]] 헤이안고-메이지 대학을 거쳐 1958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다이요 훼일즈]]에 입단했다. 동계훈련 때 빠른 공에 적응 못하며 시행착오를 겪던 중, [[검도]]에서 힌트를 얻어 오른손으로는 배트의 그립을 잡고 왼손으로 배트 중간을 잡은 채 배트 헤드를 위로 눕혔다가 공이 오면 배트를 세워 스윙하는 곤도 특유의 타격폼을 창안해 냈으니, 이것이 위에 언급한 '''텐빙 타법'''이다.[* 일설에는 고질병이던 팔꿈치 통증을 완화시키려고 만들어낸 타법이란 얘기도 있다.] [[파일:Y3nF5kn.jpg|width=300]] 그러니까 이런 해괴한 자세로 안타를 잘도 뽑아냈다는 말이다(...). ~~[[타네다 히토시]]도 두손 들 기세~~ 아무튼 데뷔 첫해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고 타율 0.270, 13홈런, 37타점이란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거둔 곤도는 1969년 까지 매년 세 자릿수 안타를 꼬박꼬박 찍으며 원조 '''안타 제조기''' 라는 별명을 얻었다(물론 그 별명은 얼마 후 [[장훈(야구선수)|장훈]]이 이어받았다). 또한 느린 발에도 불구하고 주루센스가 뛰어나 1961년 시즌 [[도루]]왕(35개) 타이틀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3할 타율을 여섯번 기록했지만 수위타자 와는 인연 없이 타격 2위만 네번 했다. ~~은근히 [[콩라인]]이다?~~ 1970년 시즌 이후 타격이 쇠퇴한 곤도는 1973년 1대 1 트레이드로 [[킨테츠 버팔로즈]] 유니폼으로 갈아입었고, 그 해를 끝으로 16년간의 현역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1736안타, 109홈런, 483타점, 159도루, 타율 0.285'''의 통산 성적을 남겼고, 베스트 나인 1회, 올스타 선발 9회를 기록했다. 은퇴 후 다이요와 [[닛폰햄 파이터즈]] 코치, 2군 감독을 역임하고 [[후지TV]], [[NHK]]의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던 곤도는 2002년 6월 10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하여 향년 66세로 별세하였다. [각주] 곤도 카즈히코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