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My Little Pony]] 제품군의 캐릭터이자 [[My Little Pony: Friendship is Magic]] TV 프로그램에 ~~배경으로~~ 나오는 포니는 [[골든 하베스트(Friendship is Magic)]]을 볼 것. 嘉禾[[분류:영화 배급사]] Golden Harvest [목차] == 개요 == 1970년에 창립한 [[홍콩]]의 메이저급 영화사. [[홍콩]] 영화계의 거물인 추문회, 하관창[* 골든 하베스트 내에서 추문회 회장 다음인 서열 2위로 [[1997년]] 사망하였다. [[성룡]]에겐 거의 양부급으로 존경받았고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양풍 이 세 사람이 합심해 설립한 회사다. 쇼 브라더스의 사장이었던 추문회가 쇼 브라더스의 회장이자 총수인 소일부의 회사 경영 방침에 불만을 품고 있던 도중, 방일화[* 가수 출신으로 쇼 브라더스 회장 소일부의 애인이었다.]에게 사장 자리를 빼앗기고[* 소일부는 방일화가 사업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고, 가수 활동 외엔 아무런 사업적인 경력도 없는 그녀에게 과감하게 덥썩 사장 자리를 맡겨 버렸지만, 이는 낙하산이라는 뒷말과 비난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자연히 기존 쇼 브라더스의 간부들이나 감독들은 반발할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회사를 퇴사하는 감독들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정창화(영화감독)|정창화]]다. 정창화는 자신의 회고록이나 여러 인터뷰에서 방일화를 신나게 비난하기도 하였다.][* 소일화와 방일화의 관계에 대해선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4904|이 글]]을 참조,] 밀려나자 나유, [[정창화]] 등과 함께 쇼 브라더스를 퇴사하여 만든 회사이다. 추문회는 [[장철]]에게도 같이 가자고 권했었지만, 장철은 쇼 브라더스에 잔류하였다. [[대한민국]]의 영화사와 비교하자면 [[CJ엔터테인먼트]]급. 실제로 관련도 있는데, [[CGV]]의 대주주 중 하나였기 때문. 원래 [[CGV]] 약자중 G가 골든 하베스트를 의미했었다. 지금은 계약이 끝나긴 했지만.. == 역사 == 흔히 둥! 둥! 둥! 둥! 하는 묵직한 효과음[* [[개그 콘서트]] [[꺾기도]]에서 [[김준호(개그맨)|김준호]]의 변신 [[브금]]으로 사용되었다.]과 함께 직사각형 네개가 모여 웅장한 음악과 함께 정사각형 모양의 G자 이니셜[* 네번째 사각형이 조금 짧다.]을 만드는 로고가 인상적이다. [youtube(jf_c9jHAjqY)] 하지만 초창기의 로고를 보면 [[워너브라더스]]와 흡사한 로고를 사용했던 [[홍콩]] 영화사 쇼 브라더스의 로고를 따라한게 보인다. [youtube(wITV1hBszis)] 라이벌인 쇼 브라더스는 주로 스튜디오 촬영을 활용한 무협 영화를 만들었는데 골든 하베스트도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여기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적인 영화사로 거듭나기 위해 헐리우드와 손잡고 합작영화를 제작하고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애초에 골든하베스트의 설립 배경 자체가 쇼 브라더스에서 일하고 있던 추문희가 저예산 스튜디오 촬영을 고집하는 소일부 회장의 경영방침에 반기를 들고 1970년 쇼 브라더스를 나와 설립한 것이다.] 덕분에 [[닌자 거북이]]나 [[캐논볼]]같은 무술 및 코미디가 들어간 개봉작을 비롯하여 [[쇼 오브 포스]]같은 진지한 영화를 이 영화사에서 제작 및 배급을 맡았다. 그리고 [[이소룡]]을 필두로 [[홍금보]], [[성룡]], [[원표]]를 뜻하는 [[가화삼보]][* 골든 하베스트사의 세 보배라는 뜻. 골든 하베스트사의 한자 명칭은 橙天嘉禾娛樂集團有限公司(등천가화오락집단유한공사)이다. 골든 하베스트가 2009년 오렌지 스카이(등천)와 합병하여 명칭에 등천이 추가된 것. [[http://ko.wikipedia.org/wiki/%EC%98%A4%EB%A0%8C%EC%A7%80_%EC%8A%A4%EC%B9%B4%EC%9D%B4_%EA%B3%A8%EB%93%A0_%ED%95%98%EB%B2%A0%EC%8A%A4%ED%8A%B8|#]]. 골든하베스트에 해당되는 한자는 [[http://hanja.naver.com/word?q=%E5%98%89%E7%A6%BE|가화]]이다.]를 배출해 내기도 했으며, [[임정영]]의 [[강시선생]] 시리즈도 대단한 흥행을 거두었다. [[대한민국]]과도 인연이 있어서 황인식, 황정리, 왕호, [[김태정]][* 사망유희 때 [[이소룡]]을 대역할 배우를 모집했는데 마땅한 배우가 없어 곤란을 겪던중 당시 동아수출공사 오너였던 이우석 회장이 김태정을 데려가 오디션을 보게했고 합격점을 받았다. 흥행에도 성공해 이후 [[대한민국]]에 돌아와 몇몇 작품을 했지만 그는 곧 잊혀졌다. 사망유희로 뜨기 전까지 김태정은 호떡 장사를 하는 등 생활고로 고생했다고.. 2011년 8월 27일 원인불명의 갑작스런 복통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등 유명한 발차기 고수들도 발탁되어 활약했고 동아수출공사와 합작으로 몇몇 작품을 찍기도 했다. 이 협력관계는 끈끈해서 골든하베스트 홈 비디오 수입 라이센스도 동아수출공사가 거의 독점했다.[* 그전에 1989년까지만 해도 세경문화영상에서도 골든하베스트 영화를 출시하긴 했었다. 세경은 1970~1980년대 이소룡과 왕우가 출연한 작품이나 무협, 시대극등 다양하게 출시한 반면 서진통상은 극장개봉한 작품이나 미개봉한 B급물 위주로 출시했다.] ([[서진통상]]에서 동아수출공사가 수입한 골든하베스트 영화를 출시해오다 계약이 끝난 1991년부터는 동아수출공사가 자회사인 영성프로덕션을 설립해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 [[홍콩]] 영화가 급격한 침체기로 접어들자 골든 하베스트도 휘청[* [[성룡]]이 영화를 찍을 때마다 매번 예산을 초과해 펑펑 써댄 게 원인이란 말도 있다. 실제로 성룡이 골든 하베스트 내에 자신의 전용 제작사 Golden Way Films를 만든 뒤 직접 메가폰을 잡은 1980년대 중,후반의 영화들은 지금 봐도 아찔할 정도의 스턴트와 블록버스터 같은 장면들로 성룡의 완벽주의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골든 하베스트에서 [[성룡]]에게 준비된 예산 내에 영화를 완성시키면 100만 [[홍콩 달러]]의 보너스를 준다는 요청(물론 [[성룡]]은 이 제안을 매번 거절하였다고 한다.) 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성룡이 감독, 주연한 골든 하베스트 창립 20주년 기념작인 <미라클>의 흥행 실패로 영화사가 도산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게다가 [[홍콩]]의 [[중국]] 반환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이자 골든 하베스트의 여명기인 1990년대 중반 성룡의 작품들은 거액을 투입하고도 흥행에 참패했다. 이럴 때마다 골든 하베스트의 부사장인 하관창은 성룡을 옹호했다고 한다.]이기 시작해 2001년을 끝으로 작품을 내놓지 않고 영화관 사업과 수입, 배급에 치중하다 결국 2007년 11월 1일 [[중국]] 영화사 청톈 엔터테인먼트에 매각되었다. [각주] 골든하베스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