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郭馬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인물로 오나라의 합포태수 [[수윤]] 수하의 사병대장이다. 수윤이 계림태수로 임명될 때 수윤이 질병 때문에 광주에 머물러 있었기에 곽마에게 5백의 병사를 주어 먼저 그 곳으로 가서 이민족들을 회유하게 했는데, 279년에 수윤이 죽자 법으로 인해 그의 군대가 다른 곳으로 흩어져야 했으므로 몇 대에 걸쳐 곽마와 정을 쌓은 군사들은 슬퍼하고 있던 도중에 [[손호]]는 광주의 호구를 정확하게 조사해 조세를 확실하게 부과하려고 했다. 이에 분노한 그는 부장 하전, 왕족, 오술, 은흥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광주독 우수 등을 죽인 후에 [[왕번]]의 동생 왕저와 왕연이 당대의 명사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명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였으며, 스스로 도독교, 광이주제군사, 안남장군이라고 칭해 은흥을 광주자사, 오술을 남해 태수에 임명하면서 하전에게는 창오군, 왕족에게는 시흥군을 공격하도록 시켰다. 손호가 [[등수]]에게 1만의 병력을 주어 보냈지만 시흥에서 왕족에게 막히면서 남해태수 [[유략#s-3|유락]]이 살해당하거나 광주자사 서기가 축출되는 등 토벌하지 못했으며, 손호는 오가 멸망할 때 남방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에 "이로써 오는 멸망하는구나"라고 한탄했다. 손호가 [[도준]]과 [[도황]]을 시켜 정벌하게 했지만 그 직후에 [[서진]]이 오나라를 공격했기 때문에 도준과 도황은 북쪽으로 향했으며, 결국 오는 서진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그 후의 곽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서진에 채용되었는지, 그 이전에 죽었는지도 불명이다. [[서진]]의 [[육기]]는 '변망론'에서 서진의 오 정벌을 가리키는 '태강의 전투'와 곽마의 반란을 가리키는 '광주의 난'을 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미디어 믹스 == || http://san.nobuwiki.org/pic/sancg/11pk/144.jpg || || [[삼국지 11]] 일러스트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최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답게 능력치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6/74/40/20. 분투, 몽충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8/71/49/30/50에 특기는 4개. 징병특기를 가지고 있으나 매력이 50밖에 안되는 관계로 없는것보단 나은 수준에 불과하다. 특이하게 사병을 가진 재야장수로 등장하지만 병력 3천의 일반 보병대라 가치를 많이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삼국지 11]]에선 무력, 통솔이 70언저리라 후반부에는 쓰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쯤가면 장수들 모두 합해도 70명을 넘지 못하는지라...-- [[삼국전투기]]에선 [[고우키]]로 패러디되었다. 난을 일으켰다는 데서 1컷, 마지막에 관심 가져달라며 또 1컷 등장. [[분류:동오의 인물]] 곽마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