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s://tv.pstatic.net/thm?size=80x100&quality=9&q=http://people.phinf.naver.net/20150418_217/1429288228839U7Uqa_JPEG/yonhapnews_28441619.jpg?width=150 郭義榮 1911년 5월 28일 ~ 1992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이다. 1911년 [[충청북도]] [[청주시|청주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법학전문학교(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총독부]]의 공무원이 되어, [[괴산군]]수 등을 지냈다. [[8.15 광복]] 후에는 청원[[군수]], 충청북[[도청(행정)|도청]] 광공국 상무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2년 무소속구락부에 속하였으나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대한민국 국회]] 부흥위원회(현재의 [[국토교통위원회]]와 유사)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자유당에서 정책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가 다시 같은 해 8월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이후 같은 해 9월부터 1960년 5월까지 체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4.19 혁명]]에 따른 민심 수습으로 경질되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 연루에 따른 반민주행위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이 때 [[변호사]]로 자유당 동료 [[국회의원]]이었던 [[박세경]]을 선임하였다. 1961년 반민주행위자로 분류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규제를 당하였고, 1963년 말경 [[제6대 국회의원 선거]] 후에야 해금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청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민기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떠나 주정협회 회장, [[새마을금고]]연합회 부회장, 임광토건 [[회장]], 대성공업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청주시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곽의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