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KBO)]] || 이름 || 곽현희 || || 생년월일 || [[1973년]] [[8월 6일]] ||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 출신학교 || 서울성동초 - 배재중 - [[배재고등학교 야구부|배재고]] - [[영남대학교|영남대]] || || 포지션 || [[투수#s-1|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6년/신인드래프트|1996년 신인드래프트]] [[해태 타이거즈]] 2차 4라운드 지명 || || 소속팀 ||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1996~1998) [br] [[해태 타이거즈]] (1998~2000) [br] [[KIA 타이거즈]] (2001~2004) || [목차] == 소개 == 전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의 투수. 현 KIA 타이거즈 재활 코치. 1973년생으로 서울 출신이다. 등번호는 17(선수시절 1997-2004)-84(코치 2009~2016). == 프로시절 ==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해태의 지명을 받았으나, 당시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김정수(1962)|김정수]] 등의 뛰어난 투수들이 많았던 해태인지라 곽현희는 상무에 입단하여 군 복무를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상무는 순수 아마야구단이었기에, 프로 입단 전에 미리 병역을 해결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듯하다. 1998년 군 복무를 끝내고 입단했는데, 당시 해태에서 삼성으로 현금 트레이드된 프렌차이즈 스타인 [[조계현]]의 등번호인 17번을 구단에서 곽현희에게 줬으니, 해태가 그에게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1999년 타이거즈가 팀순위 5-7-6을 찍고, [[홍현우]], [[양준혁]], [[장성호]], [[이호준#s-1|이호준]]이 장타력을 과시할 때 유일한 10승 투수가 곽현희였다. 이 시절, 1번 [[정성훈]]으로 시작하여 [[장성호]]-[[홍현우]]-[[트레이시 샌더스]]-[[윌리엄 브릭스]]-[[양준혁]]-7번 [[이호준]]으로 이어지는 타선이 막강했으나, 정작 투수진은 [[이강철]], [[이대진]]이 부상으로 1경기도 못 나왔다. 유망주 [[김상진(1977)|김상진]]은 시즌 중 세상을 떠났으며, 1996-1998년 사이에 우선 지명(고졸우선/1차)한 [[서재응]], [[최희섭]], [[김병현]]은 모두 대학교에 진학한 후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다. 그리하여 1999년 해태는 곽현희가 10승을 한 것을 빼면, [[유동훈]], [[오봉옥]]을 뺀 투수진은 전멸했다. 즉, [[곽채진]], [[황두성]], [[최상덕]] 등이 모두 [[좆망]]했던 것이다. 그 후 부상 때문에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 은퇴 이후 == 결국 2004 시즌 종료 후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한다. 은퇴 후 KIA 타이거즈에서 계속 코치를 했다. 2013시즌 중 1군 트레이닝 코치였으나, 3군 재활코치인 [[홍세완]]과 보직을 바꿔 2014년에는 3군 재활코치를 맡았다. 2017 시즌을 앞두고 정리되었다. [[분류:야구선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분류:1973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 [[분류:해태 타이거즈]] 곽현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