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2/Coat_of_Arms_of_the_Mercedarians.svg/100px-Coat_of_Arms_of_the_Mercedarians.svg.png The Royal, Celestial and Military Order of Our Lady of Mercy and the Redemption of the Captives [[http://orderofmercy.org/|홈페이지]] [[중세]] [[가톨릭]]의 종교 [[기사단]]. 1218년에 기사 돈 페드로 데 놀라스코[* [[스페인]]식으로 표기되었으나 원래는 남[[프랑스]] 출신이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성 베드로 놀라스코'로 표기하고 있다.] 의 주도로 창설되었다. 속량의 성모회, 자비수도회, 메르체다리오회 등으로도 불린다. [목차] == 설명 == 다른 기사단과 달리, 칼을 휘두르지 않은 특이한 사례. 사실 이 기사단의 창설 목적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방의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붙잡힌 유럽인 [[노예]]들을 구할 목적으로 세운 기사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적 집단을 습격하는 식의 무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에게서 기부받은 기부금[* [[유럽]] 각지의 성당에 고장난 [[나침반]]을 달아놓고 신자들에게 기부금을 받았다고 한다.]으로 노예들을 사들여 고향으로 풀어주는 식으로 평화적인 방법을 지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를 부린 [[이슬람]] 측의 욕심이나 기타 이유로 [[순교]]한 기사들이 때때로 발생하였다. 구출 순위는 포로로 잡히거나 납치당한 직후 몸값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우선순위로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자칫 잘못하면 [[해적]]들에게 돈 맛을 알게 해 오히려 해적행위를 부추긴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바르바리 해적]]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유럽 각국 정부들이 손놓은 상황에서[* 해적들에게 무력 방식을 몇 번이고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간간히 패배하는 경우도 보였다. 더욱이 이슬람 측에서는 이러한 해적행위를 성전의 일부분으로 보아 그 지역 정부와 사회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고 -물론 [[구호기사단]]의 해적행위를 보는 유럽 기독교의 입장도 마찬가지였지만- 당대 최강의 국력을 자랑했던 [[오스만 제국]]의 후원을 받은 상황에서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 역시 해적들을 이용해 기독교 국가들의 전력을 분산시켜 자신들의 정복 활동을 좀 더 용이하게 하고자 했다.] 다른 대안은 없었을 듯. 구출 기사단의 평화적 방법 이외에는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 성과 == 1218년 [[에스파냐]] 출신의 기사 돈 페드로 데 놀라스코에 의해 설립된 이 기사단은 4년 뒤인 1222년 [[교황]]의 인가를 받고 그해 160명의 기독교도 노예들을 처음으로 구출한 이래로, 1779년, 즉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10년 전까지 총 344회에 걸쳐 557년 동안 노예로 붙잡힌 이들을 구출하였다. 거꾸로 뒤집어 말하자면 이 때까지 [[유럽]] 본토가 해적들에게 삥을 뜯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실 신항로 개척 이후 대서양 지역에 비하면 지중해 지역은 [[리즈시절]]을 지나 소외되어서 상대적으로 국가의 관심이 덜 받긴 했지만.] 여담으로, 해적들이 완전히 말소된 때는 [[1차 바르바리 전쟁|바르바리 전쟁]]을 거쳐[* [[미국]]의 첫 해외 군사 행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가 [[북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때이다. 물론 프랑스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입각해 북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것이지만. 어찌보면 기독교 정신에 가장 부합한, 그리고 다른 기사단보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기사단일 수 있을 것이다. == 현대의 기사단 == 기독교도 노예 구출이 무의미해진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존속의 위기를 겪었으나 대대적인 회칙 개정과 방향 전환으로 오늘날에도 꾸준히 교육, 자선, 사회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설립자인 놀라스코는 1628년에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1월 28일]]이다. == 구출수도회(삼위일체 수도회) == 비슷한 시기 구출 [[수도회]]도 따로 있어 1197년 프랑스 출신의 [[수도자]] 장 드 마타(마타의 성 요한)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199년 첫 구출을 시작, 500여년동안 50만명이 넘는 기독교도 노예들을 구출하였다고 한다. 이 두 단체는 해적이 사라질 때까지 노예로 잡힌 이들을 구원하였다. 그리고 평생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우선으로 해적들로부터 구원하여 노예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서원 역시 해산 때까지 지켜졌다. 그나마 이들이 해방시킨 이들 중 유일하게 이름이 남겨진 이는 바로 [[세르반테스]]. 구출수도회의 경우도 19세기 바르바리 해적들이 사라진 이후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 교육과 봉사, 선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2002년]] 한국에도 [[천주교 마산교구]]에 진출하였다. [[http://www.trinitari.org/|홈페이지]] [[http://cafe.daum.net/trinitykorea|카페]] [[분류:기사단]] 구출기사단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