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1990년대]] [[분류:정치 사건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 관련 문서: [[내부고발]], [[사건 사고 관련 정보]], [[흑역사/목록/정치와 행정]], [[부정선거]] ||이 항목은 [[이지문]]으로도 리다이렉트됩니다.|| 1992년 3월 22일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학생군사교육단]] 출신 [[소대장]] 이지문 [[대한민국 육군|육군]] [[보병]][[중위]]가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을 폭로한 사건이다. [[http://www.coolenjoy.net/bbs/cboard.php?id=gallery&no=131257&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cat=0&ga=|요약정리된 페이지]](원본을 알고있는 사람은 추가바람.) 이지문 중위는 1991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ROTC]] 29기로 임관해서 육군 [[제9보병사단]] 28 연대 2대대 6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운동권]] 출신 대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군에서 노골적으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도록 [[정훈|정신교육]]을 할 것'''과 '''부재자 투표에서 무조건 기호 1번을 투표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투표용지를 빼앗거나 불이익을 주도록 할 것'''이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을 알았다. 이에 1992년 3월 22일 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약칭 공선협) 전국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24세. 기자회견 직후 이지문 중위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헌병]]들에게 연행되었다. 그리고 그 해 4월 파면 처분을 받았다. 그는 원래 [[삼성그룹]]에 취업이 예정된 사람인데, 파면으로 인해 '''육군 [[이등병]] 전역''' 처리당해, 채용이 취소되어 버렸다.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993년 12월 [[대법원]]에 의해 파면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 폭로 사건의 여파로 민주자유당은 14대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곧바로 친여 무소속을 영입하여 과반수를 확보했다. 이 사건은 군 부재자투표가 영외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대안이 아닌 일반 부재자와 같은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게된다. 또한 이 사건 이후 군에서도 특정 후보를 찍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아예 공직선거법 238조에 "군인에 의한 선거자유방해죄" 조항이 별도로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건 이후 위와 같은 행위는 [[부정선거]]에 해당된다. 부정선거 항목에서 해당 조항을 읽어볼 수 있는데 내용이 이 사건과 겹친다. 명예회복 후 전역한 이지문 중위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시 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정계를 떠난 이후에는 공익제보자 모임, 호루라기 재단 등에서 시민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현재 사단법인 한국공익신고지원센터 소장이다. [[송곳(웹툰)]] 에서 주인공이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시절 [[대대장]]으로부터 집권여당에 투표할 것을 지시받는데 이 사건이 모티브가 된 듯 하다. 영화 [[변호인]]의 양심선언하는 육군 [[군의관]] 윤성두 군의중위의 모델이기도 하다. 2011년 연세대학교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추첨민주주의]](선거 대신 추첨으로 국회의원, 지방의원을 선출하자는)로 박사학위 취득 후 『추첨민주주의 이론과 실제』, 『추첨민주주의 강의』 등을 통해 추첨민주주의 연구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6년 현재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다. [[분류:군사 사건사고]][[분류:노태우 정부]]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사건사고 (원본 보기) 군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사건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