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NPB)]] [[분류:야구선수]] http://www.pref.hiroshima.lg.jp/uploaded/image/4569.jpg || 이름 || 기누가사 사치오(衣笠 祥雄) || || 생년월일 || 1947년 1월 18일 || || 출신지 || [[일본]] [[교토]] 부 교토 시 || || 포지션 || [[1루수]], [[3루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65년 || || 소속팀 || [[히로시마 카프]](1965~1987) || || 지도자 경력 || 없음 || |||||||||||| '''1984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 || [[하라 타츠노리]][br]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기누가사 사치오[br]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 [[랜디 바스]] [br]([[한신 타이거스]]) || ||<#ff0000> '''{{{#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 영구결번}}}''' || ||<#b30000> {{{#d9d9d9 No.3}}} || [목차] == 소개 == 전직 [[일본프로야구]] 선수이며 지금은 [[야구]] 해설가, 평론가로 활동 중. [[루 게릭]]이 갖고 있던 '''2130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경신[* 1987년 6월 13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2131경기로 경신했다.]한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철인]]'''이다. == 학창 시절 == 1947년 [[미군]] [[흑인]] 사병이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며, 중학교 시절 [[유도]]에 관심이 많았으나 학교에 유도부가 없어 대신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글구보니 [[장훈(야구선수)|장훈 옹]]도 학교에 수영부가 없어서 야구를 시작했지~~ 헤이안 고교 시절엔 [[포수]]로 활동하며 [[고시엔]] 대회에도 진출하는 등 [[나름]] 좋은 활약을 보였다. == 프로 시절 == 1965년 당시로선 파격적인 '''1천만엔'''이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거기다가 [[히로시마 카프|히로시마]]는 당시 모기업도 없는 [[시민구단]]이었다!'''] [[히로시마 카프]]에 입단, 당시 감독이던 [[시라이시 카츠미]]의 지시로 [[내야수]]로 전향했고, 1968년 부터 주전 [[1루수]]로 1군에 정착하였다. 1975년 부터는 히로시마 신임 감독으로 온 '''조 루츠'''[* 일본 야구사상 최초의 [[메이저리그]] 출신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그 해 15경기 만에 감독을 사퇴했다(...). 하지만 지금의 '''{{{#red 붉은 카프}}}'''의 이미지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에 의해 [[3루수]]로 포지션을 이동했으며 타선에서는 4번이던 [[야마모토 코지]]의 뒤를 받치는 5번 타자로 맹활약하면서 그 해 히로시마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센트럴리그]]를 제패하고,[* [[일본시리즈]]에선 [[한큐 브레이브스]]에게 2무4패로 무너지면서 한큐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선물했다.] 이후로도 3회의 일본 시리즈 우승(1979~1980년, 1984년)에 큰 힘을 보탰다. 그 후 기누가사는 [[야마모토 코지]] 등과 함께 '''빨간 헬멧군단'''의 주포로 꾸준히 플레이 했고 1976년 도루왕, 1984년 타점왕을 차지 하였으며 [[MVP]] 1회, 베스트 나인 3회를 수상하는 등 히로시마의 주축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기누가사가 자랑할 만한 기록 중 하나가 바로 '''2215경기 연속 출장기록'''[* 기누가사의 기록은 1996년 6월 14일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경신되면서 일본 기록으로 내려앉았다. 립켄 주니어의 최종 연속출장 기록은 '''2632경기'''.][* 참고로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1766경기'''로 기누가사에 이어 [[NPB]] 연속 출장 2위 기록 보유자 이지만 '''연속 경기 무교체 출장(1492경기)'''과 '''연속 이닝 출장(13686이닝)'''의 세계 기록을 갖고 있다. 근데 카네모토는 이 연속 출장이 몸을 악화시켜 자신의 선수생활을 끝내버린 원인이 되어버렸다.]이며 이는 1970년 시즌 최종전 부터 1987년 10월 22일 현역 은퇴 경기까지 18시즌에 걸쳐 작성된 것이다. 그 외에도 통산 2500안타, 500홈런의 기록도 달성하였다. 1987년 시즌을 끝으로 기누가사는 현역에서 은퇴 하였으며, 23시즌 동안 '''2543안타, 타율 0.270, 504홈런, 1448타점, 266도루'''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 500홈런-200도루는 [[장훈(야구선수)|장훈]] 옹, [[야마모토 코지]]와 함께 일본프로야구에서 단 세 명만이 기록한 진귀한 기록이다. == 은퇴 이후 == 지도자 생활과는 연이 없었으며[* 여담으로 이러한 경력과는 상관없이, 게임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2010]]의 야마가사 코치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현재는 [[TBS]]의 해설가, [[아사히 신문]]의 평론가로 일하고 있다. 한편으로 [[니혼 TV]]의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 중이기도 하다. [[히로시마 카프]] 시절 팀메이트 이던 [[에나츠 유타카]] 와는 지금까지도 동료이자 친구로 막역한 사이이며, 특히 에나츠가 각성제 소지 혐의로 형무소에 수감되자 에나츠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난카이 호크스]] 시절 스승인 [[노무라 카츠야]]와 에나츠의 또 다른 친구이자 당시 [[국회의원]] 이던 [[에모토 타케노리]]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에나츠 구명 운동을 벌인 바 있다. 덕분에 에나츠는 1995년 4월 가석방으로 풀려나며 야구계에 복귀하였고 당시 에나츠는 "나의 석방을 위해 힘써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만약 내가 형무소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을 지도 모른다" 라면서 기누가사를 포함하여 그를 도와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기누가사 사치오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