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NPB)]] [[분류:야구선수]] http://www.sanspo.com/baseball/images/100909/bsk1009090511000-p1.jpg ~~[[박정배|정배형?]]~~ ||<:>'''이름''' || 기사누키 히로시 (木佐貫洋) || ||<:> '''생년월일''' || 1980년 5월 17일 || ||<:> '''국적''' || [[일본]]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200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 ||<:> '''소속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3~2009) [br] [[오릭스 버팔로즈]] (2010~2012) [br]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3~2015) || |||||||||||| '''200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신인왕]]''' || || [[이시카와 마사노리]][br]([[야쿠르트 스왈로즈]]) || → || '''기사누키 히로시[br]([[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카와시마 료]][br]([[야쿠르트 스왈로즈]]) || [목차] == 개요 ==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前 프로야구 선수. == 선수 생활 == [[아세아 대학]] 시절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될 만큼 뛰어난 자질을 보였고, 200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루키시즌인 2003년에 두 번의 완봉승을 포함해 10승을 거두며 신인왕에 오르는데, 이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정체된 모습을 보였으며, 오른쪽 견갑골 수술까지 받는 등 시련을 겪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신인 투수들에게 가혹한 환경이긴 하지만 그만큼 기복이 심한 투수였다. 2007 시즌에 12승 9패 방어율 3.09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다시 조명을 받았지만, 그 다음 시즌은 심한 기복에 시달리며 후반기를 2군에서 보냈고, 2009 시즌은 아예 2군에만 머물렀다. 결국 2009 시즌 종료 후 오릭스로 트레이드되는데, 2010 시즌에 오릭스에서 10승(12패)을 거두며 부활했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오릭스의 에이스인 [[가네코 치히로]]가 어깨 부상으로 전반기를 뛸 수 없게 되자, 개막전 선발투수를 놓고 새로 합류한 [[박찬호]]와 경합을 벌였고, 최종적으로 개막전 선발투수로 발탁된다. 그리고 개막전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9이닝 2실점이라는 인상적인 피칭을 선보였지만 오릭스 물타선이 [[와다 츠요시]]에게 철저하게 막히는 바람에 간신히 패전만 면했다. 하지만 이후 들쭉날쭉한 피칭으로 2군에 두 번이나 내려가는 고난을 겪었으며 결국 2승 7패 평균자책점 4.60의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2 시즌에는 이제 아예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나오지 못하게 된 에이스 가네코를 대신해 팀의 에이스로 152이닝을 던지면서 2.60의 평균자책점으로 퍼시픽리그 평균자책점 9위[* 이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가 13명밖에 없었던걸 감안하면 다소 낮지만 기사누키는 그 전엔 한번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해본 적도 없었다.]에 랭크되면서 분전했지만 정작 승은 '''5승'''밖에 못 거두면서 한국의 [[류현진]]과 미국의 [[클리프 리]]와 같은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시즌 종료 후 2013년 1월 23일, 니혼햄의 호타준족 외야수인 [[이토이 요시오]]를 포함한 3대 2 트레이드의 주요 선수에 포함되어 니혼햄으로 팀을 옮겼다. 트레이드로 이동한 전력만 보면 풀타임 출장 시즌마다 3할에 10홈런/20도루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는 이토이가 테이블세터진 혹은 3번 타자로 합류하게 될 오릭스가 이득을 본 셈이지만 이토이가 2013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기 때문에 가능한 트레이드라는 평가. 그래도 니혼햄으로서도 1,2선발인 요시카와와 타케다를 받쳐줄 선발이 더 필요했고[* "손수건 왕자"라고 불리며 주목받았던 신인인 사이토 유키의 부진이 특히 컸다.] 이토이는 다르빗슈와 달리 FA로 미국에 진출할 예정이기 때문에 포스팅비를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어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트레이드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두 팀 모두 파리그 하위권을 순항중이다~~ ~~그리고 이토이는 2015년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뛰고 있고~~ 2015년에는 계속 2군에 머물러 있다가, 9월 29일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경기를 위해 다음 날인 9월 30일에 1군 등록이 되었고, 같은 날 열린 삿포로돔 지바 롯데전에 구원 등판하여 1이닝 2탈삼진을 포함한 삼자범퇴로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했다. 통산 성적은 219경기 63승 73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75. == 그 외 == 전형적인 우완 정통파 투수로 145km까지 나오는 직구와 더불어 수준급의 포크볼을 가지고 있어 이 조합으로 꽤 많은 삼진을 잡아냈다. 겸손하고 친절한 성격인데다 노력가로 알려져 있어 야구 팬들 사이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NPB에서 뛰었던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이 많은 선수 중 한 명인데, [[이승엽]], [[박찬호]], [[이대호]]와 같은 팀에서 뛰었으며 상술했듯 박찬호와는 개막전 선발투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관계였다. 이 당시 기사누키는 박찬호에게 체인지업을 배웠고, 박찬호는 기사누키에게 포크볼을 배웠다고 한다. 포크볼을 가르쳐준 보답으로 박찬호가 기사누키에게 한국 요리를 대접하기도 했다고. 일본 야구계에서는 유명한 [[철덕]]이라고 한다. 경기장으로 갈 때 전철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며, 2004년 [[큐슈 신칸센]]의 부분 개통식 때는 [[센다이역]]의 일일 역장을 맡기도 했다. 기사누키 히로시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