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절/한국]] '길상사'라는 이름의 절은 전국에 산재해 있다. [[성북구]]에 위치한 길상사가 가장 유명하나 [[서울특별시]] 내에도 [[관악구]]와 [[서대문구]]에도 있다. [목차] == [[서울특별시]] [[성북구]]의 [[절]] == [[파일:attachment/gilsangsa.jpg|width=600]] 吉祥寺 [[http://www.gilsangsa.or.kr|홈페이지]] [목차] === 개요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불교]] [[절|사찰]]. [[1997년]]에 세워졌으므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최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大苑閣)이 불교 사찰로 탈바꿈한 특이한 설립 이력으로 유명한 곳이다. === 내력 === 공덕주 김영한(1916~1999)은 가난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만난 남편과 사별한 후, [[기생]]이 되었다. 기명은 진향(眞香). 시인 [[백석(시인)|백석]]과 사랑에 빠졌으나, 신분 때문에 남자측 집에서 결혼을 반대하여 끝내 맺어지지 못했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자야'라는 여성이 그녀이다. 이렇게 신분으로 인해 사랑이 좌절되는 사례는 흔한 [[클리셰]]로 보이지만, 시대가 정말로 그랬다. [[기생]]을 천하게 여기는 풍토는 [[8.15 광복]] 이후에도 계속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기생을 지금 기준으로 봐도 그나마 건전하게 보면 [[밤무대]] [[연예인]]이고, 일반적으로 보면 술집 작부, 매우 나쁘게 보면 [[매춘|매춘부]]인데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방이 남자를 대상으로 연예, 접대, 매춘 세 가지를 모두 겸비해서 영업을 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이미지가 좋을 수는 없다. 그리고 해방 후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백석과는 영영 이별하게 되었고, 성북동 기슭에 요정인 대원각을 차려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백석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항상 마음에 담아둔 채 홀로 지냈다.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에는 매년 식사를 하지 않으면서 그를 기렸다고 한다. 백석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는 생전에 그녀가 했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언제 백석에 대해 가장 생각이 나느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어디 있나"라고 답했고, 대원각을 시주할 당시의 심경에 대해선 "1,000억 원이란 돈이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고 말했단다. ~~이 분도 시인의 기질이~~ 그러던 중 승려 [[법정(승려)|법정]]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1987년]] 법정 스님에게 요정 터 7,000여 평과 40여 채의 건물을 시주하니 절을 세워달라고 간청하였다. 실로 [[대인배]]가 아닐 수 없다. 법정은 처음에 사양하였으나, 결국 1995년 이를 받아들여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웠고, 이때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당시 시가로도 1,000억 원이 넘는 액수였다고 하는데, [[무소유]]를 설하던 법정이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시주를 받은 데 대하여 불교 내부에서도 논란은 있었다. 그러나 법정이 신나서 덥석 받은 것도 아니고, 10년 가까운 실랑이 끝에 그녀의 마지막 원을 이루어준 것이니 이를 비난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1999년에 김영한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화장]]하여 절터에 뿌려졌다. 절터에 골고루 산골했기 때문에 따로 무덤은 없으나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가 절 안에 있다. [[2010년]] [[법정(승려)|법정]]도 여기서 [[입적]]했다. 극락전에 김영한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진영각에 법정의 영정과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사족으로, [[법정(승려)|법정 스님]]이 처음 출가하신 사찰인 [[송광사]]의 옛 이름이 길상사다. 출가한 사찰과 한때나마 같은 이름을 사진 사찰에서 입적하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 분위기 ===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절 치고 평범한 [[절]]은 없다지만, 이 절은 본래 [[요정]]이었기 때문에 절의 풍경부터 다른 전통적인 사찰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산책하면서 마음 가라앉히기에는 오히려 편안한 측면도 있다. 군사정권 시절 요정정치가 벌어지던 밀실이 지금은 누구나 참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그밖에도 불교 관련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 등이 갖추어져 있다. 다만 요정이었던 길상사 금당은 [[불상]]과 주변물 정도만 가져다 놓았을 뿐 더 이상 꾸미지 않아 상당히 썰렁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 주변에 비교적 규모가 있는 건물을 새로 새우는 것에 비하면 조금 아쉬운 부분.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09/0612/IE001066962_STD.jpg?width=400 이 절의 명물인 [[관세음보살]]상. 현대식 조각품인 관세음보살상은 법정이 [[종교]] 간 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에게 의뢰하여 봉안하였다. 사찰의 설립식 행사 때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절을 방문해 축사를 한 적이 있고, 법정은 이에 대한 답례로 [[명동성당]]을 방문해 설법을 했다. [[성모]]상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나이 지긋한 불자들은 좀 낯설어하기도 하는 듯. [[최종태]] 씨는 길상사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종로구]] [[http://www.hyehwa.org|혜화동 성당]]의 [[성모]]상도 조각했는데, 이 [[성모]]상과 관세음보살상은 마치 친자매처럼 매우 닮았다. 제작자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1116500136|최종태의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가 좀 불편하다. 성북동은 버스노선조차 별로 없는 부촌이라서... 2015년 4월자로 셔틀버스가 폐지되었다.대신 길상사 앞까지 가는 마을버스 노선인 [[서울 버스 성북02]]가 길상사까지 연장되었다. 걸어서 올라가면 20~30분 쯤 걸린다. 그래서 [[석가탄신일]]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오는 날에는 교통 전쟁이 벌어진다. 어떤 [[택시]]는 이 때를 노려서 [[합승]]을 권유하기도 한다. 택시 요금은 셔틀버스 정류장 기준으로 기본요금 내. === 트리비아 === 여담으로 도쿄도 무사시노시의 키치죠지와 한자가 같다. 재미나게도 [[마광수]]교수와도 인연이 연결된다. [[백석]]을 롤모델로 한 [[윤동주]]연구 대가이면서, 그가 발굴한 유명 시인 중에는 [[백석]]을 가장 존경한다는 [[안도현]]시인이다. 거기에 필화 사건 당시 불교 방송에 게스트로 참석했는데, 이 때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이가 고교 후배이기도 하는 [[김광석]]이다. 노래하는 시인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김광석]]의 법명인 원음을 지어준 이는 [[법정(승려)|법정]]스님. == [[충청북도]] [[진천군]]의 [[사당]]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 508번지 도당산에 있는 [[신라]]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당시 폐허가 되었으나 1926년에 재건하고 1959년에 개축하였다. 1976년에 사적지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전면 신축하였다. [각주] [[분류:절]] [[분류:사당]] 길상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