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롯데 자이언츠/선수목록]], [[야구 관련 인물(KBO)]] http://photo-media.daum-img.net/200811/29/sports/20081129090102.505.jpg?width=400 ||<:> '''이름''' || 김경환 || ||<:> '''생년월일''' || [[1970년]] [[7월 11일]] || ||<:> '''학력''' || 마산중-[[마산고등학교 야구부|마산고]]-[[경성대]]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1993년 롯데 자이언츠 1차지명 || ||<:>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3 ~ 1997) || [목차] == 개요 == '''마산의 최동원'''이라 불리웠던 사나이 프로에서도 큰 기대를 모았지만 아마시절 혹사 후유증으로 빛을 보지 못한 불운의 아이콘 가장 큰 무대인 [[1995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렬한 불꽃을 내뿜고 산화한 선수 == 아마 시절 == 고등학교 시절부터 묵직한 패스트볼과 위력적인 커브를 뿌리며 마치 [[최동원]]의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고, '마산의 최동원'이라는 별명도 그때 따라왔다. 경성대 진학 후에는 후배 [[신재웅]]과 원투펀치를 결성해 경쟁팀들을 죄다 관광을 보내버리는데, 이 당시 김경환은 140Km 중후반대의 패스트볼과 종으로 떨어지는 파워커브, 횡으로 휘어나가는 슬로커브를 주무기로 삼았는데 그야말로 언터쳐블 수준이었다. 특히 커브만큼은 전성기때 커브의 달인이라고 불리운 [[김상엽]]과 [[김원형]]과 비교되는 수준으로 나중에 프로에서 잠깐 활약했을때 프로 선수들조차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레벨임을 입증했다. 이 당시 김경환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정도였냐면 국가대표 시절 일본 프로야구 쪽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었던 [[김성근]]도 ''''너무 탐나는 선수''''라는 말로 극찬을 했을 정도.[* 김성근 뿐 아니라 훗날 롯데 감독이 되는 [[김명성]]을 비롯해 다른 코치들로부터도 김경환의 구위라면 일본에서도 통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졸업반 때 당연히 롯데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 그 [[마해영]]이 김경환때문에 1차지명을 받지 못하고 2차지명으로 밀렸을 정도. 계약금 9,000만원에 연봉 1,200만원, 총액 1억 200만원으로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 이후 롯데 역사상 두 번째로 억대 몸값을 받고 입단했다. 좀 흠좀무한게 이 당시 롯데가 김경환이 대학교 4학년 시절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1차지명을 강행하고 억대의 몸값을 안겨준 것. 그만큼 김경환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 프로 시절 == 신인임에도 선발투수로 낙점받고 시즌을 준비했다. 전해에 [[199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다소 여유가 있었던 팀 분위기 탓도 있었겠지만, 김경환에 대한 기대치를 입증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기도 했다. 프로 첫 해 신인이었음에도 10승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아마시절부터 말썽이었던 어깨 통증에 일찌감치 발목이 잡혀버렸다. 시범경기에서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전열에서 이탈했으며 진단 결과 어깨가 생각보다 많이 손상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결국 그 해 6월 어깨 수술을 받지만 예후가 좋지 않았던지 좀체로 회복하지 못하고 이듬해인 1994년 6월 다시 재수술을 받았다. 재활 기간동안 군 문제를 해결하고자 방위복무를 함께 병행했다. 결국 입단하고 2년 반이나 지난 1995년 후반기에야 가까스로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데뷔전은 8월 10일 마산 해태전에서 구원등판하여 1이닝 퍼펙트를 기록. 그러나 아마시절의 구위는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으며, 실제로 정규리그 종료때까지 선발등판 1경기 포함 총 9경기에 등판해서 1승 1패 5.89의 평균자책점이라는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다. 투수의 어깨 부상은 팔꿈치 부상과는 달리 지금도 예후가 좋지 못한 부상이다. 최근의 사례로 봐도 [[손민한]]이 은퇴 위기에서 4년의 공백을 겪은 뒤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했고, [[전병두]]는 5년이 넘는 재활로도 결국 재기하지 못하고 은퇴를 해야만 했다. [[조정훈]] 또한 지금까지 6년째 재활만 반복하고 있고 그나마도 재기가 불투명한 상태다.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하물며 90년대 중반의 어깨 부상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갈 따름.[* 김경환과 같은 해에 프로로 들어온 [[이대진]]이 어깨부상을 당한 뒤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김경환의 진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은 포스트시즌이었다.[* 당시 [[김용희]]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포스트시즌 엔트리를 구성하면서 투수쪽의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윤형배(1969)|윤형배]]와 김경환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심 끝에 김경환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비록 한 차례 패전을 기록하긴 했지만 2.0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호투로 조금씩 예열을 하더니 [[1995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선 정규리그 1위팀 [[OB 베어스]]를 상대로 2승에 평균자책점 제로라는 엄청난 활약을 뽐냈다. 역동적인 투구폼과 날카롭게 제구가 되는 패스트볼, 각도 큰 폭포수 커브에 OB 베어스 타자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김경환의 피칭을 직접 보거나 중계로 시청한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저건 못 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1승 2패로 뒤진 상태에서 김경환이 4, 5차전에서 잇달아 승리투수가 되는 맹활약으로 롯데는 시리즈스코어 3승 2패로 앞서나간다. 김경환 본인은 그때도 어깨에 통증이 있었지만 코칭스태프보다 본인이 등판에 더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김경환이라는 존재를 한번만이라도 팬들에게 각인하고 싶었다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자신을 택해준 [[김용희]] 감독에게 보답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6차전을 완패한데 이어 7차전마저도 선발투수 [[윤학길]]의 부진과 [[박정태]]의 실책으로 내주며 한 끗 차로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김경환은 최종 7차전에서도 6회부터 등판해 경기 종료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냈지만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만 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만약 이 때 롯데가 한 경기만 더 잡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면 한국시리즈 MVP는 김경환의 몫이었기에 더 많은 팬들이 좀 더 오랫동안 기억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고 그나마도 훗날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1999시즌의 극적인 플레이오프의 임팩트]] 때문에 이 당시 김경환의 불꽃 투혼은 철저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강상수]]처럼 죽도록 욕을 먹어도 나름 오랫동안 활약하거나, [[가득염]]처럼 가늘고 길게라도 선수생활을 했으면 모르겠지만, 김경환은 단 한시즌도 제대로 풀타임으로 활약한 적이 없고 그나마 반짝했던 포스트시즌조차도 준우승에 그치는 바람에 어지간한 골수 [[부산아재]]들마저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당장 이 위키만 해도 1995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 중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어쨌든 한국시리즈의 맹활약 덕택에 박동희 이후의 마무리투수를 찾아야 했던 팀은 반색했고 본인도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1996년은 일찌감치 팀의 마무리투수로 낙점받고 다른 투수들보다 더 일찍 동계훈련에 매진했지만, 불행히도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시 어깨 통증이 찾아와 전열에서 이탈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해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을 하면서도 어깨에 통증이 있었다는 것으로 봐서는 재활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복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십중팔구는 다시 부상이 찾아온다. 김경환 이후에도 [[주형광]]이 그랬고 [[손민한]] 또한 그러했다.] [* 김경환이 낙마한 마무리투수 자리는 이 해 입단한 신인 [[차명주]]에게 돌아갔다.] 재활로도 좀체로 어깨 상태가 회복되지 않자 선수생명을 걸고 1996년 9월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크 조브 박사에게 세 번째로 어깨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2년에 걸친 재활에도 불구하고 패스트볼의 최고구속이 130Km대에 머무르는 등 구위가 좀체로 살아나지 않았고, 결국 1998 시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본인이 구단에 자퇴서를 제출하며 퇴단하며 선수생활을 마쳤다. 당시 [[김용희]] 감독을 비롯해 주변에서 많이 말렸지만 본인의 의지가 확고했다고. 아마시절 최고의 투수는 그렇게 프로에서 단 한번, 최고의 무대에서 반짝한 뒤 조용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됬다. 김경환이 퇴단을 결심하기 이전부터 롯데구단에서는 김경환의 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출하지 않고 끝까지 김경환의 재활을 도왔다고 한다. == 지도자 시절 == 2008년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김해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김해고 야구부는 창단 이후 한동안 뛸 선수조차 없어서 고교야구에선 동네북 취급을 받았는데, 김경환 감독 부임 후 차근차근 전력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참고로 팀의 좌완투수 [[김태현(야구선수)|김태현]]이 2016년 [[NC 다이노스]]로부터 1차지명을 받아 김경환 감독이 지도한 선수 중 최초로 프로 1차지명을 받은 선수가 되었다. == 여담 == 지금도 사인을 해 줄때면 프로 시절 소속팀과 배번인 'LOTTE 47'을 함께 써준다고 한다. 본인에게 큰 좌절을 안겨준 프로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별개로 아직까지 롯데에 대해선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 연도별 주요 성적 == ||||||||||||||||||||||||||||||||<#000000> {{{#ffffff 역대기록}}} || ||<rowbgcolor=#f58220>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1993||<:><|5> [[롯데 자이언츠]]||||||||||||||||||||||||||<:> 1군 기록 없음 || ||1994||||||||||||||||||||||||||<:> 1군 기록 없음 || ||1995|| 9 || 18⅓ || 1 || 1 || 0 || 0.500 || 5.89 || 19 || 2 || 6 || 16 || 12 || 12 || ||1996||||||||||||||||||||||||||<:> 1군 기록 없음 || ||1997||||||||||||||||||||||||||<:> 1군 기록 없음 || ||||<rowbgcolor=#ffff99><:>'''[[KBO리그|KBO]] 통산[BR](5시즌)''' || 9 || 18⅓ || 1 || 1 || 0 || 0.500 || 5.89 || 19 || 2 || 6 || 16 || 12 || 12 || ||||||||||||||||||||||||||||||||<#000000> {{{#ffffff 플레이오프 역대기록}}} || ||<rowbgcolor=#f58220>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1995||<:> [[롯데 자이언츠]] || 3 || 4⅓|| 0 ||1 || 0 || 0.000 || 2.08 || 5 || 0 || 3 || 3 || 1 || 1 || ||||||||||||||||||||||||||||||||<#000000> {{{#ffffff 한국시리즈 역대기록}}} || ||<rowbgcolor=#f58220>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1995||<:> [[롯데 자이언츠]] || 3 || 7⅓|| 2 || 0 || 0 || 1.000 || 0.00 || 2 || 0 || 3 || 5 || 0 || 0 || [[분류:야구선수]] [[분류:1970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 김경환(야구선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