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 width=300><table align=right>[[파일:attachment/김두식.jpg|width=300]]|| || '''이름''' ||김두식(金斗植)|| || '''출생''' ||[[1967년]] [[10월 6일]] (서울특별시)|| || '''소속''' ||[[경북대학교]] [[법학]]부 교수|| || '''수상''' ||2004년 한국백상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저술상|| || '''종교''' ||[[개신교]][* 본인 말에 의하면 자신이 근본주의 개신교인이라고 한다.]|| || '''가족''' ||2남 1녀 중 셋째|| || '''학력'''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br] [[코넬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변호사, 저술가. 법학, [[인권]], 양심적 병역 거부, 기독교,~~, 욕망~~에 관한 책들을 썼다. [[군법무관]]으로서 복무했고 [[검사(법조인)|검사]]를 지냈다. 검사는 곧 맞지 않아 그만뒀다. 2년 동안 [[주부]] 생활을 했었는데 자신이 점점 등처가(..)가 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한동대]] 법대 교수로도 재직했고 그때 학생 --연애-- 상담을 많이 했다고 한다. == 가족 == 부모님이 부부[[교사]]였고 넉넉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다.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그의 저서 <욕망해도 괜찮아>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 그를 낳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고, 형인 김대식 교수와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김대식 교수는 어린 시절 사고뭉치--양아치--였다고 한다. 김두식에 의하면 [[맞짱|주먹으로 싸워본]] 유일한 사람이 형이라고.] 성장 후 김대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 후 김두식에게 용돈을 부쳐주기도 하고, 김대식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면서 김두식이 부모님과 형 사이에 다리를 놓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최근 형과 토론한 내용을 담은 책 <공부 논쟁>을 펴내기도 했다. 아내는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역시 교수다. 슬하에 딸 --[[지랄]] 총량의 법칙[*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말인데, 정확하게는 유시주가 먼저 한 말이다. 유시주가 딸의 사춘기로 고민하는 김두식에게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떨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고 한다. [[사춘기]], [[중2병]]을 참고하라.]의 주인공-- 하나가 있다. == 활동 == 군법무관, 검사를 거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도 활동했다. == 저서 == * 헌법의 풍경 * 불편해도 괜찮아 * 평화의 얼굴 *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욕망해도 괜찮아 * 다른 길이 있다[*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했던 '김두식의 고백'의 인터뷰를 모은 인터뷰집이다.] * 불멸의 신성가족 * 칼을 쳐서 보습을 * 공부논쟁[* 형인 [[김대식]] 교수와 공저] [[분류:교수]][[분류:법학자]][[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 김두식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