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KBO)]] http://img.asiatoday.co.kr/file/2011y/09m/14d/527387(3)-m200263_85832.jpg ||<tablealign=center><-5><#000000><:> '''{{{#ffffff 롯데 자이언츠 역대 감독}}}''' || ||<:> [[김용희]][* 1998년 올스타전 직후 해임.] [BR] (1994~1998) ||<:> {{{+1 →}}} ||<#f58220><:> '''{{{#000000 김명성}}}[* 2001년 7월 24일 심장마비로 사망.]'''[BR]'''{{{#000000 (1998~2001)}}}''' ||<:> {{{+1 →}}} ||<:> [[우용득]][* 2002년 6월 시즌 도중 해임.] [BR](2001~2002) || ||||||||||<#000000> {{{#ffffff '''역대 전적'''}}} || ||<#dcdcdc> '''팀''' ||<#dcdcdc> '''경기''' ||<#dcdcdc> '''승''' ||<#dcdcdc> '''패''' ||<#dcdcdc> '''무''' || ||<#FFEA92> '''총계''' || '''419''' || '''202''' || '''204''' || '''13''' || |||||||||||| '''196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MVP''' || || 박명열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고등학교]]) || → || [[김명성(1946)|김명성]]([[부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공업고등학교]]) || → || 강성환([[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등학교]]) || 金明成 [[1946년]] [[9월 3일]] ~ [[2001년]] [[7월 24일]] [목차] == 소개 == [[롯데 자이언츠]]의 전 감독.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17helton&logNo=110087546747|그를 조명하는 좋은 글]]. [[http://9oarahan.tistory.com/54|사진자료가 많은 글]]. == 선수 경력 == [[부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공고]] 시절 팀의 첫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였다. 당시 [[청룡기]] [[MVP]]에 오르면서 맹활약했고, 그것이 현재까지 [[부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공고]]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다. 이 때 같이 활약했던 선수가 [[OB 베어스]]의 전 감독이었던 [[이재우(1945)|이재우]]. [[한국실업야구]] 시절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 입단해 1970년 다승왕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다가, 1977년 은퇴하였다. == 지도자 경력 ==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코치로 부임해 팀을 이끌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 빙그레, LG 등 많은 팀을 오가면서 활약했다. 특히 1994년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팀의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당시 [[김용수]], [[이상훈(1971년생 좌완투수)|이상훈]], [[정삼흠]],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 [[인현배]], [[차명석]] 등 좋은 투수를 발굴하고 성장시켜서 팀의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LG 직전에 부임했던 [[빙그레 이글스]]에서도 [[정민철]]을 지도해서 명성을 얻었다. 그 뒤 다시 [[롯데 자이언츠]]에 복귀하여 무너졌던 롯데 마운드를 재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98년 시즌 도중 해임당한 [[김용희]] 감독을 대신하여 감독 대행을 맡아 무난하게 잔여 시즌을 이끌면서, 1998 시즌 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 롯데 감독 시절 === ==== 1999년 ==== 1999년 시즌에는 안정된 마운드를 이끌고 시즌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였다. [[문동환]]이 17승으로 제 몫을 다했고 부상에서 회복된 [[주형광]]이 맹위를 떨친 데다가 [[박석진]]이 11승을 거두면서 활약했다. 여기에 특급 [[한국 프로스포츠의 외국인 선수|외국인 선수]] [[펠릭스 호세]]와 잠재력이 완벽히 폭발한 [[마해영]]의 공격력까지 가세하며 간발의 차로 [[드림리그]] 2위를 차지한다. 플레이오프 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어 극적인 승부 끝에 4승 3패로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 오른다. 그러나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한국시리즈에서는 너무 힘을 많이 뺀 관계로]] [[한화 이글스]]에게 패배. ==== 2000년 ==== 2000년 시즌에도 매직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은 진출했지만 드림리그 3위였던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에서 1승 2패로 패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삼성 감독은 김명성의 전임이었던 [[김용희]]였다.(...) ==== 2001년 ==== 그리고 운명의 2001년 시즌. 구단 측에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문제로 관계가 틀어진 [[마해영]]을 [[김주찬]], [[이계성]][*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은퇴하였다. 그리고 심판으로 KBO 리그에 돌아와서, 무명선수 시절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이 병신같은 오심 퍼레이드로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인지도 면에선 [[김풍기]], [[강광회]], [[박근영]]에 밀리지만 정말 주옥같은 판정으로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익히 유명하다. 안경을 써서 시력이 안좋아 그럴수도... ~~근데 [[김응국|응국이형]]처럼 할줄 알았는데 빠따질은 시원찮았음...~~]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보복 트레이드해 버렸고, [[임수혁]]은 이미 2000년 시즌 초에 [[식물인간]]이 되어 다시는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손민한]]이 드디어 가동되면서 힘을 보탰지만 나머지 투수진의 부상 이탈이 늘어나며 상황은 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4강과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던 상황. 2001 시즌은 [[유래와 유례|유례]]없는 4위 싸움으로 치열했던 시즌이었다.[* 최종 4위 한화와 최종 8위 롯데와의 승차는 겨우 2게임.] 매 게임 치열한 승부로 인해 김명성 감독의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고 있었다. [[2001년]] [[7월 24일]] 휴식일에 [[친구]]를 만나고 오는 도중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려져 긴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세.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롯데 자이언츠]]는 갑자기 팀의 선장을 잃으면서 흔들렸고, 자이언츠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8888577]]의 단초가 되고 만다. 만일 김명성 감독이 갑작스레 타계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꼴지는 안했거나 암흑기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롯데 자이언츠]]는 [[KBO]]에 경기 연기를 요청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평가 == 평소 스포츠맨답지않게 [[다도]]와 [[서예]]를 취미로 즐겼고,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당시 철수하는 선수들을 만류하면서 '게임은 치뤄야 한다. 너희들이 이러면 [[KBO 리그|한국프로야구]]는 끝장이다'라고 설득했다는 일화, [[심정수]]가 [[강민영]]의 투구에 얼굴을 맞아 입원했을 때 직접 [[심정수]]에게 찾아가 위로와 사죄의 말을 건넨 모습 등에서 후덕한 덕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너무 갑작스런 타계로 인하여 뛰어난 투수코치이자 지도자를 잃은 것은 야구계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 여담 == 2012시즌 이후 감독님 기일만되면 굵직한 [[대첩]]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한화전 1승 2패 ~~그 1승은 3블론으로 만든 1승이지 사실상 1패에 가까운 경기였다.~~, 이 외에도 2014년 '''삼성전 1:17 참사''', 2015년 '''[[724 대첩|백용환의 끝내기]]'''로 불리는 끝내기패, 2016년 카스티요에게 8이닝 1실점 압살당하는 몰상사 등 전적이 안좋다. 이러다 감독님 기일때만 되면 징크스가 생기는게 아닐까 우려가 된다.~~내년에는 경기가 없는걸로 위안삼아야 하나,그 전날 또는 2018년이 문제~~ [[분류:야구선수]][[분류:야구감독]] 김명성(1946)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