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불교/인물]] [include(틀:국내 정치인)] [[파일:/image/038/2012/07/18/alba02201207182133180.jpg]] 金三 1918년 08월 23일 ~ 2012년 07월 18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1918년 [[강원도]] [[강릉시|강릉군]]에서 태어났다. 강릉공립보통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강릉읍내에 삼원당이라는 서점을 내고 이곳을 중심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한 '''독서회'''를 구성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1940년 구금돼 7개월 동안 고문을 당했고 함흥형무소로 이송된 뒤 1945년 2월까지 5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8.15 광복]] 이후 건국청년회, 우국동지회, 한국독립당, 민족통일 건국전선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이승만]] 정권 때 [[지방선거]]에서 강릉시의회 의원, 강원도의회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한편 [[윤봉길]] 의사 사업회 부회장, [[김창숙]] 선생 사업회 부회장, [[김구]]선생 살해규명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강릉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김명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강릉시-[[명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민주당, [[민정당]], [[민중당(1965년)|민중당]], 신민당에 속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최익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강릉시-명주군-[[삼척시|삼척군]] 선거구로 [[공천]]을 받았으나 출마를 포기하여 대신 김명윤이 공천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강릉시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김삼(정치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