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배우/한국]], [[불교/인물]] [[파일:배우 김승호.gif]] [목차] 김승호(金勝鎬, [[1917년]] [[7월 13일]][* [[호적]]상의 [[생년월일]]은 1년 늦은 [[1918년]] 7월 13일이다.] ~ [[1968년]] [[12월 1일]])는 [[일제강점기]]의 연극배우이며, [[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다. [[본명]]은 김해수(金海壽)이다. [[아들]]로는 역시 [[배우]]인 김희라가 있으며, [[손자]]로는 역시 배우인 금성이 있다. [[종교]]는 [[불교]]이다. == 생애 == >'''60년대 우리 배우, 김승호를 기억하라 "<박서방> <삼등과장>"''' >'''근대화 그늘속 서민 삶 대변한 '큰 배우' 김승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원조 국민배우"''' 김승호는 1917년 7월 13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출생하였고, 이후 [[경성부]](現 [[서울특별시]])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1930년대]] 중반에 [[김두한]]이 동양극장 청춘좌에 소개해 준 것을 계기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였다. 광복 이후 [[1945년]], 자유극장 창립단원 가운데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1946년 영화 《자유만세》[* [[8.15 광복|해방]] 후 제작된 첫 번째 극영화다.]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1956년]], [[영화]] 《[[시집가는 날]]》에서 맹진사 역을 맡은 그는 [[195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상 (희극상)을 수상하면서 스타로서의 지위를 확립해 나갔다. 이후 《로맨스 빠빠》, 《[[마부]]》, 《돈》, 《인생차압》, 《박서방》, 《삼등과장》, 《굴비》, 《돌무지》 등 2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제1공화국에 대한 부정 연설한 이유로 4.19단체에서 자택에 습격받았지만, 김두한에 의해 오해가 풀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262&aid=0000003953|2010년 10월 25일 신동아]].] [[1967년]]에는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68년 12월 1일,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향년]] 52세. == 필모그래피 == 1946년 자유만세(데뷔작) 1956년 [[시집가는 날]] 1955년 어느 여대생의 고백 1960년 로맨스 빠빠(감독 [[신상옥]]) - [[김진규]], [[신성일]], 김승호 [[마부]] 돈 인생차압 박서방 삼등과장 [[굴비]] 돌무지 [[사화산]] == 수상목록 == 1957년 제4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특별상 (희극상)(일본 도쿄) 1958년 제1회 [[부일 영화상]] 남우주연상 1959년 제2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1959년 제8회 서울시 문화대상 연극부문 1960년 제7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 1961년 제8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 1961년 제11회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1963년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 1963년 제1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1964년 제3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1967년 제14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 1967년 제5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분류:한국 남배우]] 김승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