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KBO)]] [[분류:야구선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분류:1961년 출생]] [[분류:포수]] [[분류:타자]] [[분류:우투우타]] [[분류:두산 베어스]] [[파일:김영신.jpg]] [[파일:김영신_선동열.jpg]] 국가대표 시절 [[선동열]](좌측)과 함께 찍은 사진. ||<:> '''이름''' || 김영신(金榮伸) || ||<:> '''생몰년도''' || 1961년 11월 9일 ~ 1986년 8월 15일 ||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 '''학력''' || [[상문고등학교|상문고]] - [[동국대학교|동국대]] || ||<:> '''포지션''' || [[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1985년]] [[OB 베어스]] 1차 지명 || ||<:> '''소속팀''' || [[OB 베어스]](1985~1986) || ||||<#131230><:> '''{{{#ffffff 두산 베어스 영구결번}}}''' ||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ko/thumb/8/83/DoosanBearsRetired54Flag.svg/225px-DoosanBearsRetired54Flag.svg.png || [목차] == 소개 == 전직 [[KBO 리그]] 선수이며,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영구결번]]이 된 인물.''' 아마추어 선수 시절 [[1984 LA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포수로 출전하는 등 유망주로 손꼽혔고, 1985년 [[OB 베어스]]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김경문]]과 [[조범현]] 등 주전 포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 사망 == [[1986년]] [[8월 15일]] [[경기도]] [[고양시|고양군]] 송포면[* 현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강]] 하류에 익사체로 떠 있는 것을 부근 경계 초소의 초병이 발견하였다. 경찰 수사를 거쳐 성적 부진을 비관하여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진 자살로 결론 지었고, [[OB 베어스]] 측은 김영신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영결식을 치르고 김영신의 등번호인 54번을 [[영구결번]]하였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 사례다. 주전 경쟁에 밀리며 자신의 성적과 신세를 비관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선수. [[파일:김영신_기사.jpg]] 김영신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신문 기사 트레이드가 활성화되어 있는 시대였다면 다른 팀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불행히도 그 당시에는 트레이드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팀 간 트레이드 활성화의 필요성을 김영신의 사례에서 일깨워 준 사건. == 트리비아 == * 현역 시절 팀 선배인 [[투수]] [[박상열]][* 전 [[고양 원더스]], 현 [[한화 이글스]] 코치.]과 얽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1985년 여름 대구로 원정을 가서 경기 후 박상열이 득남 턱을 낸다며 숙소에서 동료들끼리 한잔 하게 되었고, 술이 부족하자 수성못 부근의 포장마차에서 2차로 또 진탕 마셨다. 술자리가 파하고 김영신이 박상열과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박상열이 수성못에서 수영 내기를 하자고 제의했고, 김영신이 수영 못한다고 하자 박상열은 "내가 [[해병대]] 출신이다. 물에 빠지면 건져 줄께" 라는 통에 결국 김영신은 박상열과 수성못에 뛰어들었지만 김영신은 절반도 못 가 돌아왔다. 그런데 물에 들어간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박상열이 나올 생각을 않자 김영신은 큰일났다 싶어 숙소로 뛰어가 [[김성근]] 감독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선수단은 발칵 뒤집혀 밤새도록 수성못 주변에서 박상열을 애타게 찾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동이 틀 무렵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경찰에 신고하려던 차에 자기 방이 아닌 [[계형철]]의 방 침대 밑에 곯아떨어져 있던 박상열이 발견되었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김성근]]이 [[박상열]]을 2군으로 내려버리면서 박상열 수성못 익사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 와중에 외야수 [[윤동균]]이 무단 외출을 했다는 사실도 들통나는 바람에(물론 100% 무단은 아니고 수석 코치이던 최주억에게 "대구의 친척을 만나고 오겠다"고 보고했지만 분위기가 워낙 살벌했는지라 최코치도 해명을 못할 상황이었다), 벌금 110만원을 두들겨 맞는 변을 당했다(...)] 그러나 1년 후 김영신은 스스로 한강에 몸을 던졌고... * [[2013년]] [[9월 23일]] [[루리웹]]에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hobby/312/read?articleId=18706601&bbsId=G005&itemId=110&pageIndex=1&t__nil_ruliweb=best&nil_id=12|넷째삼촌이 故 김영신 선수라는 인증글]]이 올라왔는데, 야구박물관에 기증해야 될 퀄리티의 엄청난 것들이 주루룩 튀어나왔다. [[흠좀무]]...[* 기증하라는 댓글이 많지만, 작성자의 아버지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거라 힘들 거라고 댓글을 써줬다...] 김영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