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金長生 (1548~1631) [include(틀:문묘 배향 18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b/Korea-Portrait_of_Kim_Jangsaeng.jpg/225px-Korea-Portrait_of_Kim_Jangsaeng.jpg 조선 중기의 학자, 정치인, 문신이다. 동방 18현 중의 한 사람이며, 본관은 광산(光山), 자(字)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시호는 문원(文元). 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이다. 송익필로부터 사서 등을 배웠고, [[이이(조선)|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8년 처음으로 관직길에 나섰으며, 1581년 [[종계변무]]의 일로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와서 돈녕부참봉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호조정랑이 되었으며, 1597년에 군자감첨정이 되었다가 안성군수가 되었다. 조정에 잠시 나갔다가 북인의 득세로 낙향하였고, 이후 계축옥사에 동생이 연좌되었다가 무혐의로 풀려나자 관직을 버리고 연산에 은둔하였다.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조정에 출사하였으나 병으로 다시 낙향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파천오자 어가를 맞이하였으며, 난이 평정된 뒤 다시 조정에 출사하였다. 이후 원자의 강학을 담당하였고, 왕의 시강과 경연에 초치되었으며 다시 낙향하여 [[이이(조선)|이이]]와 [[성혼]]을 제향하는 황산서원을 세웠으며, [[정묘호란]] 때 의병을 모아 공주로 온 세자를 호위하였다. 늦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하고 과거를 거치지 않아 낮은 직책을 전전하였으나, [[이귀]]와 함께 이이, 성혼의 학문을 계승하는 서인의 영수격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향리에서 머무르는 동안 아들 [[김집]]부터 시작하여 [[송시열]], [[송준길]] 등이 죄다 그의 밑에서 수학하였고, 이들은 [[서인]]의 학문적인 계통을 담당하는 주요 인사들이 되었다. 1688년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아들 김집도 뒤늦게 종사됨에 따라 부자가 문묘에 종사되는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이 사람의 증손자가 [[구운몽]]으로 유명한 [[김만중]]. 위키백과에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으므로 ~~부지런한 분의~~ 참고를 바람. [[분류:조선/인물]] [[분류:유학자]]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묘 배향 18현 (원본 보기) 김장생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