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범죄자/목록/한국]], [[승부조작]] [[파일:attachment/Kim_Jung-Kyum.jpg]] || 이름 || --김정겸(金正謙)-- || || 생년월일 || [[1976년]] [[6월 9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학교 || [[동국대학교|동국대]] || || 포지션 || 미드필더 || || 프로입단 || [[1999년]] [[전남 드래곤즈]] || || 소속팀 || [[전남 드래곤즈]] (1999 ~ 2004) [br] [[전북 현대 모터스]] (2005 ~ 2007) [br] [[포항 스틸러스]] (2008 ~ 2011) || || 국가대표 || 7경기 || * 상위 문서 : [[축구 관련 인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이자 범죄자. 현역 시절에는 오른쪽과 왼쪽을 따로 가리지 않고 [[미드필더]]나 [[수비수]] 등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했으며, 스피드나 공수 가담력이 떨어지지만 쓸만한 파워와 수비력, [[폭주기관차]]와 같은 거친 돌파력과 간간히 선보이는 개인기 등으로 중용되었다. == 선수 활동 == 1999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2년차인 2000년에 리그 22경기에 출전하며 잠시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2002년에는 리그에서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그 뒤 2003년 왼쪽 풀백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이영수]]를 제치고 주전으로 도약했으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움베르투 코엘류]]에 의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과의 [[2004년 AFC 아시안컵]] 지역 예선 경기에서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A매치]] 데뷔 무대를 치렀다.[* 참고로 이 당시 주전이었던 [[이영표]]와 박충균은 각각 해외파 차출 문제와 부상으로 인해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조 본프레레]] 체제 하에서도 중용되어 [[AFC 아시안컵]] 본선에도 참가했으며, 2005년 [[박재홍(축구)|박재홍]]과의 맞트레이드로 전력 향상을 꾀하던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했다. 첫 시즌에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그 뒤에는 부상 등으로 미비한 활약을 펼치다 2008년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한 [[박원재]]의 공백을 메우려던 [[포항 스틸러스]]로 팀을 옮겼고, 팀내 고참급 선수로서 수비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으며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에 공헌했다. 이렇듯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라운드에서 묵묵히 팀에 꼭 필요한 선수로 활약하며 '''빛나는 조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 [[승부조작]] == 2011년 6월 2일 소속팀 포항과 계약이 갑작스럽게 해지되었으며, 이후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바우~~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뒤 친인척을 통해 '''불법 [[토토]] 배팅'''을 했던 것이 드러났다.[* 당연하겠지만 스포츠 선수는 배당금을 노리고 승부조작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합법적인 것일지라도 토토 배팅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있다. 하물며 불법 토토 배팅을 자행했으니 말 다한 셈.] 결국 그 해 6월 28일 징역 10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협회와 FIFA로부터 5년 자격정지라는 징계를 받게 된다. 말이 5년 자격정지지 징계 당시 나이(만 35세)를 생각하면 사실상 다른 승부조작 가담자들과 함께 축구계에서 '''[[영구제명]]'''된 것이나 마찬가지. 여담으로 이 사건의 여파로 김정겸의 부친이 포항 구단 [[홈페이지]]에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 잘못'''이라며 팬들에게 대신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분류:축구선수]] [[분류:제명된 인물]] 김정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