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김(성씨)/목록]] [목차] == 학자 ==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를 지낸 학자이다. 호는 학보(學步). 일제 강점기에 할아버지인 김춘희의 조선귀족 작위를 3대째 습작했다. === 생애 === 한성부출생으로 [[1926년]] [[만주]]에서 만철실업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의 배영전문학교와 [[베이징 대학]]에서 수학했다. 전공은 중국 문학이었고, 이후 전문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김정록의 할아버지 김춘희는 [[조선]] 말기의 정치인인 [[김홍집]]의 조카였다. 한일 병합 조약체결 후 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김춘희가 받은 조선귀족 작위는 세습되는 것이어서, [[1926년]] 사망한 후 아들 김교신(金敎莘)을 거쳐 [[1932년]] 7월 경에 손자인 김정록이 습작하였다. 남작 작위를 세습하고 조선귀족 단체인 경복회에서 매달 150원의 생활보조비를 수령한 사실이 있어 광복 후인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자수하여 조사를 받았다. [[1939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다가 신병으로 사임한 상태였다. 김정록은 반민특위의 조사에 응하여, 당시 중국 유학생이라 감시를 받고 있던 터에 작위를 물려받지 않으면 사상불온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습작했다고 해명하였다. 반민특위는 김정록이 순진한 학자풍의 인물로 남을 모함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습작 사실 자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주위에서 그가 남작 신분인 것을 알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미학과 교수를 지냈다. 연구 분야는 동양미학이었다. 시인 [[김지하]]가 존경하는 스승의 하나로 김정록을 꼽은 적이 있고, [[유홍준]]도 김정록의 제자로서 영향을 받았다.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매국·습작 부문에 김춘희와 함께 포함되었다. == 야구 선수 == [[김정록(야구선수)]] 문서로. == [[대한민국]]의 [[정치인]] == [[김정록(정치인)]] 문서로. [[분류:동명이인]] 김정록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