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KBO)]] * [[LG 트윈스/선수단]]. [[개신교/인물]] [[분류:야구선수]] [[분류:대전광역시 출신 인물]] [[파일:/image/109/2005/07/08/200507080920041100_1.jpg]] http://dimg.donga.com/wps/NEWS/IMAGE/2011/11/26/42141460.11.jpg ~~[[지석진|왕코 형님]]?~~ ||||<#000000><:> {{{#ffffff LG 트윈스 No.73}}} || ||||<#c30452><:> {{{#ffffff 김정민(金正敏)}}} || ||<:> '''생년월일''' || [[1970년]] [[3월 15일]] || ||<:> '''출신지''' || [[대전광역시]] [[동구(대전)|동구]] || ||<:> '''학력''' || 가양초-한밭중-[[북일고등학교 야구부|천안북일고]]-[[영남대학교]] || ||<:> '''포지션''' || 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3년/신인드래프트|1993년 LG 트윈스 2차 1라운드 지명]] || ||<:> '''소속팀''' || [[LG 트윈스]](1993~2006, 2008~2010) || |||||||||| '''[[LG 트윈스]] 등번호 12번 (1993~2006)''' || || 나진균 (1992) ||➡|| '''김정민 (1993~2006)''' ||➡|| [[최승준]] (2007) || |||||||||| '''[[LG 트윈스]] 등번호 12번 (2008~2010)''' || || [[최승준]] (2007) ||➡|| '''김정민 (2008~2010)''' ||➡|| [[심광호]] (2011~2012) || 前 [[LG 트윈스]]의 [[포수]]이자, 現 [[LG 트윈스]] 1군 배터리코치, 현역 시절 등번호는 12번이었다. ~~[[후루타 아쓰야]]처럼 안경잡이 포수~~ 1993년 [[LG 트윈스]]에 입단했으며 1990년에 입단한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와, 1998년에 데뷔한 후배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이라는 대형급 포수들 사이에 끼어서 백업 포수로서 활약하다가 200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은퇴식[* 이 은퇴식은 '''후배'''인 [[서용빈]] 은퇴식에 꼽사리 껴서 가진 은퇴식이다.]까지 가진 후 스카우터로 일했다. 스카우터로 일하면서 그가 눈여겨본 포수가 [[김태군]]이었다. 그러나 부족해진 포수 자원을 메우기 위해 [[김재박]] 감독의 권유로 복귀했다.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의 안습적인 경기 운영과 프런트의 막장 행보[* 2008년 6월, 안 그래도 적던 포수 자원을 한꺼번에 2명([[최승환]], [[이성열(야구선수)|이성열]])이나 [[두산 베어스]]에 넘겨줬다. 물론, 트레이드 이후 둘 다 '''~~대~~폭발'''. 대 자에 취소선을 그은 이유는, 몇 시즌 뒤 부진으로 인해 둘 다 트레이드되었기 때문.]로 주전 내지 1군 백업 포수로 출전하여 LG의 상승세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2009년 5월 20일 [[무등야구장]]에서의 기아와의 경기때 [[정성훈]]의 안타때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비가와 미끄러워진 그라운드에서 3루를 잘못 밟고 넘어져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후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과 교체되어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게 된 결과 원래부터 좋지않은 아킬레스 건이 끊어져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 덕분에 LG 팬들은 죽을맛이다... 실제로 LG의 2009년 성적은 초반 하위권을 맴돌다가, 김정민을 주전 포수로 기용하자 급격히 승률이 상승하기 시작, 2위까지 올라갔으나, 부상 후 다시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이 마스크를 쓰자 7위까지 추락하였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여러 카드라에 의하면 김정민은 --별로 배울 게 없는 다른 팀 내 선배들과는 달리-- 후배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 더 컸다.][* 참고로 이 시즌 김정민과는 달리 조인성은 경기중에 영 좋지못한 일을 겪는가 하면 죄잉여라고 한창 까이고 있었다. 그런상황에서 다시 주전포수가 되었으니, DTD는 가속화되어 그 시즌 LG는 7위로 추락했다.] 일부에서는 [[김재박]]이 남긴 명언인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를 몸소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과 김정민을 [[우규민]]을 예로 들어 비교하자면,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과 배터리를 짤 때의 우규민은 '불규민'이 되었지만 김정민과 배터리를 짤 때의 [[우규민]]은 말 그대로 ''''미스터 제로''''가 된다(…). 그 만큼 리드가 좋았다는 것. 프로생활 16년동안 통산 홈런은 단 14개. 그러나, 1994년 [[9월 8일]] 잠실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해태]]전에서 2점 끝내기 홈런을 쳐서 팀 승리에 공헌했다. 그 홈런은 [[선동열]]이 [[KBO 리그]]에서 11년간 맞은 28개의 홈런 중 하나였으며, '''[[선동열]]이 [[한국프로야구]]에서 맞은 유일한 끝내기 홈런이었다.''' 재활에 성공하여 2010년 시즌부터 다시 현역으로 뛰는 듯했었다. 그러나 '''레어템이었던 [[안경|잉경]]을 얻은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이 각성해 버리는 바람에''' 잊혀졌고 2군에만 쭉 머물다가 '''현역에서 또 다시 은퇴했다.''' 2010 시즌 후 1군 배터리코치를 맡게 되었고[* 포수리드에 뛰어나고, 고참선수로서 팀에 본보기가 되는 김정민 선수가 코치가 된것을 반기는 팬들이 많았다. 그것 말고도 2010시즌을 끝으로 철밥통 배터리 코치가 해임된 것도 김정민 코치를 더 반기는 원인중 하나였다.], 등번호는 2010 시즌 후 이적한 [[심광호|2호기]]가 가져갔다. 이후 2군에서 배터리코치를 하다가 2014년 시즌 중 감독이 [[양상문]]으로 바뀌면서 [[장광호]]배터리코치와 맞바꿔 1군으로 올라갔다. 김정민(야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