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기본 정보 == 이름 김형직 (金亨稷) 출생 [[1894년]] [[7월 10일]], [[조선]] [[평안도]] [[대동군]] 사망 [[1926년]] [[6월 25일]], [[중화민국]] 지린 성 학력 [[숭실대학교|숭실학교]] [[졸업]] 직업 [[군인]], [[독립운동가]] 가족 아내 강반석, 아버지 김보현, 어머니 이보익, 동생 김형권&김형록, 아들 '''[[김일성]]'''[* [[본명]]은 김성주. 이후 김일성으로 [[개명]]함.]&김철주&김영주 == 소개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조만식]]의 [[후배]]이기도 하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1917년 [[조선국민회]]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2월 평안남도 일경에 의해 검거되어 형사소추를 받다 그 해 출옥해 조국광복회를 조직했다. 이후 [[3.1 운동]]을 지도했으며, 1925년 경찰에 체포된 후 지린성으로 망명해 활동하다 이듬해 [[6월 25일]]~~[[6.25 전쟁|어라?]]~~ 공산주의 집단에게 피살되었다. [[향년]] 33세. 그의 아내 강반석도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바 있다. == 호부견자 == '''반면, 그의 아들 김일성은 한때 독립운동을 하긴 했으나 --이마저도 사실 애들 장난감 수준.-- 이후 [[한국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고 대숙청과 철권 독재를 펼쳐 결국 한반도를 [[분단국가]]로, [[북한|그 북쪽]]을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호부견자]]의 사례는 이 외에도 많긴 하나 이 정도면 거의 [[넘사벽]]. 워낙에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이 많기도 해서 묻힌 것도 있으나 아들의 만행으로 인해 공로가 묻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아들 잘못 낳아서 개고생한 셈. 북한에서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평안북도]] [[후창군]]을 그의 이름을 따 [[김형직군]]으로 개칭했다. [[분류:인물]] 김형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