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대한민국 비보이 Hong10을 찾으셨다면, [[Hong10|여기로]] http://www.navy.mil.kr/mbshome/mbs/navy/images/010105000000/19.png 金弘烈 [[분류:한국군/군인]] |||||||||| [[대한민국 해군]]의 [[참모총장]] || || 18대 [[김철우]] || → || 19대 김홍열 || → || 20대 [[안병태]]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 해군]]의 [[제독]]. 19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김홍렬이라고 표기된 경우도 많으나 대한민국 해군 홈페이지에서는 김홍열로 표기한다. == 생애 == 1939년생이다. 1958년 [[해군사관학교]] 16기로 입학, 1962년에 항해소위로 임관했다. 능라함장과 대구함장을 거쳤고 [[장관급 장교]]에 오르면서 [[합동참모본부]] 무기체계부장, 전력평가부장 등을 거쳤다. 당시 갓 합참이 명예직에서 실질적인 군 최선임으로 변모하던 시절이었다.[* 1990년에 [[군령권]]을 각 군 본부로부터 갖고 왔다.] 사실 이 시절만 해도 아직은 그렇게 자리를 잡지는 못 한 터라 집에 갈 사람들이 앉는 자리란 인식이 강했고 김홍열 [[소장(계급)|소장]]도 곧 예편할 거란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1993년 5월 26일 전임자였던 [[김철우]] 제독이 해군인사와 [[율곡사업]] 관련 비리로 경질되고 다른 해군의 중장들도 모두 전역 조치되면서 해군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하여 중장으로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합참]]에서 근무하느라 해군 제독으로 보직도 거의 안 거친 상태에서 해군의 정점에 오른 것. 1년의 최저복무기간을 채운 뒤에 [[대장(계급)|대장]]으로 승진하였다.[* 중장 진급 후 딱 1년만인 1994년 5월 25일에 진급하였는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육/해/공군 참모총장 가운데 해군참모총장만 중장이어서 허전했는데 이제 3군의 균형이 이루어진거 같다"라며 흐뭇함을 표시했다. 출처 : 94년 5월 26일자 한겨레신문.] 1995년에 전역하였다. 후임자는 [[안병태]] 제독. [각주] 김홍열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