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동명이인/ㄱ]] [목차] = [[대한민국]]의 [[배우]] = * [[배우/한국]]. [[실향민/대한민국]] http://dimg.donga.com/wps/SPORTS/IMAGE/2010/12/20/33407309.2.jpg == 기본 정보 == || 이름 ||김희갑(金喜甲)|| || 출생 ||[[1923년]] [[7월 13일]], [[함경남도]] [[장진군]]|| || 본관 ||[[김해 김씨]]|| || 사망 ||[[1993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 || 학력 ||[[대학|메이지대학교]] 중퇴|| || 가족 ||[[부인]], 슬하 1남 5녀|| || 데뷔 ||[[1946년]] 영화 〈장화홍련전〉|| == 소개 == >'''전설적인 1세대 희극인''' [[대한민국]]의 희극 및 영화배우로 1923년 7월 18일 [[함경남도]] 장진 출신. 장진 공립보통학교와 회령 공립상업학교를 거쳐 1943년 [[일본]] [[메이지대학교]] 상학과를 중퇴하였으며 1945년 해방 및 남북분단이 되면서 탈북하여 독문학자 서항석의 문하로 들어가 반도가극단에 입단하여 [[http://100.naver.com/100.nhn?docid=183716&from=kin_body|프롬프터]]로 일하면서 무대연기를 배웠다. 영화데뷔는 1946년 11월에 찍던 영화 〈장화홍련전〉에서 변사또역을 맡은 배우가 갑자기 잠적하면서, 대역으로 출연하던게 첫 데뷔였다. 이를 계기로 <옥루몽>,<에밀레종>같은 영화에 꾸준히 나오면서 6·25전쟁 중에는 선무공작단 일원으로 종군하였다. 그리고 데뷔 10년차인 1956년 한형모 감독 영화〈청춘쌍곡선〉으로 본격적인 주연을 맡게 되면서 알려진다. 이후로 [[빨간 마후라]], 오부자(五父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팔도강산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합죽이' 라는 별명을 얻으며 서민들로부터 대인기를 얻었다. 박정희 정권때 재일교포 고향 방문단을 위문하는 공연에서 [[불효자는 웁니다]]를 구슬프게 불러서 화제였고, 이 일을 계기로 가수로도 유명해졌다.[* 그 노래를 부를 가수로 김정구가 꼽혔으나 염두해 두었으나 그가 가끔 코믹한 노래도 불렀던 가수였기에 분위기가 안 살수 있다는 판단하에 김희갑이 대신 나갔다] 팔도강산 등 국책 홍보 영화에도 출연했고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당대 [[높으신 분들]]과 친했지만 생전에는 매우 검소하게 생활하였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출연 영화 수만 해도 최장 700여편이나 되기도 하였다. 중앙일보 연재물 '청와대 비서실'에서 회고하기를 70년대 팔도강산 세계편을 찍을때 외환관리법으로 기관에 간 적이 있으며(...)[* 당시는 지금과 달리 해외 여행도 제한되어 있으며 가지고 갈 외화도 극히 적었다. 그런 이유로 암달러상을 만나다가 걸렸다는...]홍콩에서 영화 사기범들에게 걸려서 곤욕을 치를뻔 했다. 그냥 사기범도 아니고 최은희와 신상옥을 [[북한]]으로 데리고 간 알선업자였으니, 하마터면 북한 인민배우 김희갑을 볼뻔 한 일[* 다만 여기에는 이설이 있는데, 그 알선업자는 순수한 알선업자였고 북한에게 이용을 당하거나 혹은 최은희 부부가 [[월북]]을 한 것을 남한에서 납치로 몰았다는 이야기, 진실은 저 너머에] 80년대는 영화에는 출연이 거의 없어서 주로 밤무대나 가요무대에서 얼굴을 보였고 꽃뱀에게 걸려서 신문에 잠깐 나오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연기 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1950년대말 전성기 시절 [[임화수]]로부터 모진 구타를 당했다는 일화. 정치행사에 참석하라는 임화수의 요구를 김희갑이 거부하자 구타 당하게 되었다고.[* [[무풍지대]]에서는 문풍지, [[야인시대]] 김희갑 역할 배우는 코미디언 [[배영만]]이 대역을 맡았다.] [[MBC]]가 1981년 방영한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드라마)|제1공화국]]에서 이 에피소드를 촬영할 때[* [[임화수]] 역은 [[오지명]]이 맡았다.] 김희갑이 직접 자신의 역할로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촬영일자와 해외 공연 스케줄이 겹치는 바람에 무산. 제작진에서는 긴급히 대타를 찾았고 김희갑과 흡사한 외모를 소유한 연극배우 '''정진'''을 캐스팅하여 김희갑 구타사건 에피소드는 무사히 방영될 수 있었다. 정진이 배우로 이름을 남기기 시작한 시기가 이때부터 였다. 1963년 영화 쌀과 1972년 작은 꿈이 꿈꿀 때를 통해 대종상 남우조연상, 1993년 옥관문화훈장, 대종상 청룡상을 수상하였다. 1985년에는 [[북한]]에서 남북 예술공연단 일원으로 출연하여 고향인 [[함경남도]] 장진을 방문하였고 1993년 5월 18일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여담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임화수 유족이나 지인들이 김희갑이 잘못하여 맞은 짓이라는 ~~개소리~~ [[고인드립]]을 지껄이다가 김희갑 유족들의 분노어린 반발과 [[고소미]] 엄포에 찍소리 못하고 입다물던 적이 있다. == 출연작 == * 오부자(五父子) * [[팔도강산]] 시리즈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서울의 지붕 밑 * [[빨간 마후라]] * [[쌀]] * 작은 꿈이 꿈꿀 때 * 사후세계 [[분류:한국 남배우]] = 대한민국의 [[작곡가]], [[기타리스트]] = * [[불교/인물]] [[1936년]] [[3월 9일]]생으로, 위의 인물과 달리 아직 생존인물이다. [[작사가]] [[양인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에 대해 '새로운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라고 [[대본]]대로 [[디스]](…)했던 그 인물이다. 실은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김국환]]의 '타타타'를 작사한 80년대의 레전드.]의 남편으로, 한 때는 부부가 같이 콤비로 음악 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 이 인물도 '''[[신중현]]'''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뮤지션으로, 나름대로 꽤 활동했던 뮤지션인데도 대중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동명이인 배우가 더 유명했기도 했고, 지금은 잘 활동하지 않기 때문인 듯. [[분류:작곡가]] [[분류:기타리스트]] [각주] [[분류:동명이인]] 김희갑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