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농구 관련 인물(한국)]] ||<table align=right>|| http://xportsnews.hankyung.com/zData/up_img/DSC_3711-1.JPG?width=220 || || '''생년월일''' ||[[1973년]] [[6월 29일]]|| || '''출신학교''' ||[[강원사대부고]] - [[중앙대학교]]|| || '''포지션''' ||가드|| || '''신체''' ||187Cm, 91Kg|| || '''프로입단''' ||1996년 [[서울 삼성 썬더스|삼성전자 농구단]]|| || '''소속팀'''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서울 삼성 썬더스]](1996~2003)[br][[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안양 SBS 스타즈]](2003~2005)[br][[부산 KT 소닉붐|부산 KTF 매직윙스]](2005~2007) || [목차] == 소개 == '''[[남자]]''' 농구인으로, [[부천 KEB하나은행|부천 하나 외환 여자농구단]]의 코치였다. == 아마추어 선수 시절 == [[중앙대학교]] 출신으로 일명 [[마지막 승부]]세대 멤버이다. 187cm의 신장에 포지션은 가드였고 당시 중앙대학교 라인업에서는 [[식스 맨]]역할을 했다.[* 당시 주전은 김승기-홍사붕-김영만-양경민-조동기] == 실업, 프로 선수 시절 ==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하며 역시 백업 가드로서 활약했다. 2000-01 시즌 당시 챔피언결정전에서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95-95 동점 상황에서 [[조성원]]이 공을 가로채 그대로 결승 레이업슛을 넣은 것. 큰 키를 바탕으로 한 수비력도 좋은 편이었고, 괜찮은 외곽슛을 가진 가드라서 비교적 오래도록 뛸 수 있었다. FA 자격을 얻은 후, 억대 연봉을 받으며 SBS로 이적해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가, 점차 비중이 줄어들면서 다시 식스맨이 되었다. 이적 첫 해에 평균 12.4점을 넣으면서 맹활약한 것. 그 뒤로는 [[황진원]], [[이정석]] 같은 신예 가드들이 들어오면서 비중이 줄어들었다. 사실 삼성에서도 FA 당시 잡으려고 했지만, 본인이 주전으로 뛰고 싶었기에 이적한 것. 쏠쏠한 가드로서 효용성이 높았다.[* 당시 삼성은 [[주희정]], [[강혁(농구)|강혁]]이 있던 시절이라 주전으로 뛰기는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SBS에서는 [[양희승]]의 연봉을 맞춰주는 상황에서 김희선을 샐리러캡을 줄이기 위해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KTF로 보냈다. 부산에서 김희선은 말년 2년간 팀의 고참이자 식스맨, 주장으로 충실히 뛴 후, 다시 잡은 FA 때, 은퇴를 선언했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KTF도 예우를 잘 해줘서, 2년 밖에 뛰지 않은 그에게 은퇴식을 열어 주고, 팀의 코치로 임명했다. == 지도자 경력 == 2012년까지 KT의 2군 코치이자,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9월 신세계 쿨캣을 인수해 새로 출범한 [[부천 KEB하나은행|부천 하나 외환 여자농구단]]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2013-14 시즌이 끝나고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물러난 [[조동기]] 감독을 따라 함께 사퇴하였다. 김희선(농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