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www.nigelmansell.co.uk/images/racing/portrait1.jpg 현역시절 --F1 도전하시는 [[김흥국]]씨--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1/Nigel_Mansell_2007.jpg?width=300 은퇴 후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을 밀은 모습 |||||||||| '''[[1992년]] [[포뮬러 원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 || || 1991 - [[아일톤 세나]] || → || '''나이젤 만셀''' || → || 1993 - [[알랭 프로스트]] || || 이름 || Nigel Ernest James Mansell, CBE || || 생년월일 || [[1953년]] [[8월 8일]] || || 국적 || [[영국]] || || 출신지 || Upton-upon-Severn, Worcestershire || || 포뮬러 1 데뷔 || 1980년 오스트리아 GP || || 포뮬러 1 은퇴 || 1995년 스페인 GP || || 소속팀 || 로터스 (1980~1984) [br] [[윌리엄즈]](1985~1988,1991~1992,1994) [br] [[페라리]](1989~1990) [br] [[맥라렌]](1995) || || 주요 경력 || 월드 챔피언 : 1회(1992년) [br] 그랑프리 우승 : 31회(역대 4위) [br] 포디엄(시상대) : 59회(역대 9위) [br] 폴 포지션 : 32회(역대 5위) [br] 최고 랩 스피드 : 30회(역대 4위) || ---- [[영국]] 출신의 [[F1]] 드라이버로 [[제키 스튜어트]], [[그레이엄 힐]], [[짐 클락]]등과 함께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드라이버 중 한명으로 [[아일톤 세나]], [[알랭 프로스트]]와 더불어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 까지의 [[F1]]을 대표하는 드라이버 [목차] === 초창기 커리어 === 대부분 어린나이에 카트를 시작하는 [[F1]]드라이버들과는 달리 제법 나이가 있는 15살에야 카트를 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으로 포뮬러 포드와 F3에서 차례차례 커리어를 쌓은 후 1980년 [[로터스]]소속으로[* 2012시즌 현재 [[키미 라이코넨]]이 속해 있는 로터스와는 다른 팀이다. 만셀이 속한 팀은 팀 로터스라 해서 1954년에 콜린 채프먼이 세우고, 이후 퍼시픽 레이싱팀으로 개칭해 1995년까지 F1에 있던 팀이었다. 스털링 모스, 마카 하키넨, [[아일톤 세나]]가 거쳤던 팀.][* 2012년 현재 키미 라이코넨이 속한 로터스 팀은 톨먼, 베네통, 르노를 거쳐 현재 공식적으로 로터스-르노라 불린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간다고? [[2005년]], [[2006년]]도 시즌 챔피언이던 [[페르난도 알론소]]가 있던 팀이다.] [[F1]]에 데뷔하게 된다. 당시 그렇게 강팀이 아니던 [[로터스]]의 머신으로 폴 포지션과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몇번의 [[포디엄]] 피니시를 하고[* [[로터스]] 소속으로서 마지막 시즌이었던 1984년에는 전체 16전에서 5번의 포인트 피니시와 1번의 폴포지션을 차지했는데 이 5번을 제외하고는 머신트러블이나 사고로 인한 [[리타이어]]였다. [[흠좀무]] ] 1984년을 끝으로 [[로터스]]를 떠나 당시 강팀이었던 명문 [[윌리엄즈]]로 이적하게 된다. 강팀인 [[윌리엄즈]]로 이적한 만셀은 그야말로 자신의 실력을 맘대로 꽃피우기 시작한다. 이적 첫해 31포인트 드라이버 순위 6위를 기록하는 산뜻한 시작을 알리고 다음해인 [[1986년]] [[맥라렌]]의 [[알랭 프로스트]]와 함께 챔피언 경쟁을 다투지만 우승을 더 많이 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의 [[리타이어]]하는 바람에 2포인트차로 챔피언을 놓치고만다. 심기일전 하는 마음으로 다음시즌인 [[1987년]] 월드 챔피언에 도전해보지만.... === 쟁쟁한 라이벌, 비운의 사나이 === http://copawriters.files.wordpress.com/2012/03/blog-airton-sena-4-in_ayrton_senna_11.jpg?width=400 해설하자면 왼쪽부터 88, 90, 91년 월드챔피언 [[아일톤 세나]], 85, 86, 89, 93 월드챔피언 [[알랭 프로스트]], [[나이젤 만셀]] 그리고 81, 83, 87년 월드챔피언 [[넬슨 피케]] 즉 81년부터 93년까지 단 2시즌 빼고 이 네 사람들이 챔피언을 나눠 해먹었다. 그가[[F1]]에 몸담고 있던 시기는 [[F1]]역사상 천재적인 드라이버들이 엄청난 경쟁을 했던 시기였다. 87년 시즌 챔피언의 꿈을 향해 불사르지만 팀 메이트인 [[넬슨 피케]]보다 더 많은 우승을 하고도 잦은 사고와 리타이어로 포인트를 까먹으며 다시한번 드라이버 순위 2위를 기록하고 만다.--[[콩라인]]--[* 심지어 당시 친정팀인 [[로터스]]소속의 [[아일톤 세나]]에게도 거센 추격을 받아야 했다] 다음해인 88년 시즌에는 틈만나면 엔진과 서스펜션 문제로 퍼지는 [[윌리엄즈]]머신으로[* 그도 그럴것이 당신 [[윌리엄즈]]는 잘 쓰던 [[혼다]]의 [[터보]][[엔진]]을 [[맥라렌]]에게 빼앗기고 [[듣보잡]] Judd [[엔진]]을 사용한데다 새로 개발한 서스펜션이 문제가 많았다] 단 두번의 완주[* 근데 그 두번의 완주가 다 포디엄 [[ㅎㄷㄷ]]....]밖에 하지 못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즌 중반에는 수두까지 걸리면서 2번의 그랑프리를 불참하게 된다. 결국 88년 시즌을 시원하게 말아먹은(9위) 만셀은 [[페라리]]로 이적한다. [[엔초 페라리]]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선택한 마지막 드라이버로서 [[페라리]]에서 뛰게 되었지만 당시 [[페라리]]는 영국의 두 팀[* [[맥라렌]]과 [[윌리엄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머신 경쟁력이 좋지 않았고 88년 부터 90년까지는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가 서로 [[맥라렌]]에서 치고 박으며 챔피언십을 경쟁하던 시기기 때문에 만셀이 낄 자리는 없었다. 결국 [[페라리]]에서 1990년 드라이버 순위 5위를 기록한것을 끝으로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윌리엄즈]]의 수장인 프랭크 윌리엄즈경이 찾아오고 윌리엄즈경의 설득에 다시한번 [[윌리엄즈]]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 --[[요시 그란도 시즌]]!-- 대기만성의 아이콘으로 === [[맥라렌]]에게 [[혼다]]의 [[터보]][[엔진]]을 빼앗기고 고전하고 있던 [[윌리엄즈]]는 [[터보]]가 퇴출되는 89년 시즌부터 이를 박박 갈고 있었고, 엔진 공급사도 [[르노]]로 바꾸면서 엔지니어들도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취직한 엔지니어 중 두명이 현재 [[F1]]의 거물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는 [[로스 브런]]과 [[애드리언 뉴이]]] 그리고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랙션 컨트롤을 차용하면서 점점 머신의 퍼포먼스 향상시키고 있었고 이 시기에 만셀이 들어오게 된다. 이적 첫 해 [[맥라렌]]의 [[아일톤 세나]]에게 챔피언십 경쟁에서 발렸지만....[* 초반 3그랑프리 연속으로 세나가 우승할동안 만셀은 리타이어를 쌓으면서...] 다음해인 1992년 [[윌리엄즈]]의 FW14B는 더욱 강력한 퍼포먼스를 만셀에게 선물해주었고 결과는.... http://www.formula1.com/wi/597x478/manual/williams1992.jpg?width=350 --[[요시 그란도 시즌]]-- 쉽게 말해 만셀은 [[1992년]] 시즌을 그냥 쌈싸먹었다. 전체 16전 중에서 단 2번을 제외하고 모든 그랑프리에서 폴 포지션을 따냈고[* 이 기록은 2011년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가 [[세바스찬 베텔|어느 젊은 독일놈]]에게 깨진다] 9번의 우승이 모두 폴투 윈[* 폴 포지션 -> 우승]이었다. 지난해 챔피언이었던 [[아일톤 세나]]는 단 두차례 우승밖에 못하고[* [[모나코]]와 [[호주]]그랑프리][* 92년 [[모나코]]그랑프리는 F1역사에 길이남는 명승부이다. 랩당 2초나 빨랐던 만셀은 초반부터 피트스탑한 세나에게 계속 가로막히며 2위를 차지하는데 어찌보면 세나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4위로 내려앉았고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과 준우승을 모두 윌리엄즈의 드라이버[* 만셀과 리카르도 파트리셰]의 차지하면서 그동안 쟁쟁한 라이벌 속에서 불운속에 챔피언이 되지못한 커리어를 보상받게된다. 그리고 [[1992년]] 영광스러운 챔피언이 된 후 [[F1]]을 은퇴하게 된다. === 은퇴 후 === 은퇴후 [[1993년]] CART[* 훗날 챔프카로 이름이 바뀐 인디카의 카테고리 2008년을 끝으로 폐지되고 인디카에 편입되었다]에 뉴먼-하스 레이싱 팀[* 스피드광으로 유명했던 배우 [[폴 뉴먼]]이 세운 챔프카 팀, 챔프카 역사에서 8번이나 우승한 명문팀이었다]데뷔하여 그해 신인상과 챔피언(!)이 되었고, [[1994년]]에는 [[아일톤 세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공백을 매꾸기 위해 [[F1]]에 잠시 돌아와 최종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커리어 마지막 우승으로 하고 [[1995년]]에는 [[맥라렌]]에서 두번의 그랑프리를 뛰면서 길고 길었던 [[F1]]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 이야기 거리 === * 특유의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이다. [[탑기어]]에 출연했을때 [[제레미 클락슨]]이 태어날때 부터 수염이 난채로 태어났다고 소개할 정도로 [[영국]]에서 그의 콧수염은 우리나라의 [[김흥국]]만큼이나 유명한 이야깃거리. * 아들이 둘 있는다 둘 다 레이싱 드라이버다. 하지만 아버지의 재능을 [[랄프 슈마허|이어받진]] [[브루노 세나|못한거]] 같다. [[2010년]]에는 두 아들을 데리고 [[르망24시]]에 출전하였으나 4랩만 돌고 [[리타이어]]했다. [[분류:모터 스포츠/관련 인물]] 나이젤 만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