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개요 == 洛山寺 虹霓門. [[조선]]의 7대 왕 [[세조(조선)|세조]]가 1467년에 [[낙산사]]에 직접 행차하여 지은 석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낙산사]]는 [[정철]]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중 하나로 고대로부터 동해 일출경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문무왕]] 11년인 671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절로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나 [[여몽전쟁]] 초기 1231년에 [[몽골]]에 의해 절이 모조리 소실되었고 이때 수백여년을 이어오던 관음상과 수정염주, 복장 등의 보물들을 몽골병에게 약탈당해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후 200여년이 넘게 쓸쓸한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세조(조선)|세조]]가 1468년에 [[학열]]대사(學悅)를 중창주로 삼아 절을 대규모로 새로 중창하였다. 낙산사 홍예문은 세조가 낙산사를 새로 크게 중건하기 1년 전인 1467년에 처음 낙산사로 행차했을 때 직접 자신이 진두지휘하여 세운 무지개 모양의 석문으로 폐허였던 낙산사터에서 가장 먼저 완공한 것이다. 홍예문을 이루고 있는 26개의 화강석돌은 당시 [[강원도]]에 있던 26개의 고을에서 석재를 하나씩 만들어 가져오게 한 것으로 세조가 강원도 26개 고을의 화합과 주민들의 안녕을 하나하나 기원하며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1_02_01&VdkVgwKey=21,00330000,32&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낙산사 홍예문 (洛山寺虹霓門)]] >[[낙산사]] 소장. 조선 세조 13년(1467)에 왕이 낙산사에 행차하여 절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다. 당시 강원도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의 수령이 석재를 하나씩 내어 26개의 화강석으로 홍예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 >홍예문 위에는 1963년 세운 누각이 있는데, 앞면 3칸·옆면 1칸의 문루이다. 이 문루는 주변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홍예석 주위에 자연석을 쌓고 세워 특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분류:조선]] [[분류: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낙산사 홍예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