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기담]] [목차] [[파일:남두오성.png]] == 소개 == [[궁수자리|남두육성]]과는 헷갈리면 안된다. [[1992년]] [[롯데 자이언츠]]의 3할 타자 [[전준호]], [[이종운]], [[박정태]], [[김민호(1961)|김민호]], [[김응국]]을 합쳐 부른 별명이다. 이들과 나머지 선수들이 합쳐서 세운 팀타율 .289의 기록은 1987년 삼성(팀타율 .300), 1999년 롯데(팀타율 .291) 그리고 전무후무한 ~~타신투병~~타고투저로 기록될 2014년의 삼성(팀타율 .301), 넥센(팀타율 .298), 두산(팀타율 .293), SK(팀타율 .291)를 제외하고 아무도 넘지 못한 무서운 장벽. 만약 1991년 .347의 타율을 세운 [[장효조]]의 전성기가 1년만 더 길었더라면... --말 그대로 남두육성-- 생각만 해도 무섭기 짝이 없다.[* 1992 시즌 .265 54안타의 커리어 로우를 기록한 [[장효조]]는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고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박정태]] 1명 빼고 전부 좌타자에 홈런타자가 아닌 교타자라는 점에서 NPB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1990년대 중후반 머신건 타선이나 MLB [[신시내티 레즈]]의 1970년대 빅 레드 머신에 비견할만한 라인업이다. 이들을 개개인으로 나눠 살펴보자면, == 멤버 == === '''[[전준호]]''' === ||120경기 출장 / 타율 .300 / 140안타(3위) / 5홈런 / 49타점 / 90득점(5위) / 33도루(3위)|| 리드오프였던 전준호는 3할 타율과 33도루를 기록하며 1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나 1991년에 보여줬던 가능성을 확실히 터트린 시즌이었다. 단순 방망이로만 따지면 롯데 시절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해였다. === '''[[이종운]]''' === ||108경기 출장 / 타율 .314 / 126안타 / 3홈런 / 57타점 / 66득점 / 21도루|| 이종운은 .314의 타율과 '''14개의 3루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한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이였으나, 2014년 [[서건창]]이 17개의 3루타를 쳐내며 기록을 경신했다.]으로 '쳤다 하면 3루타' 라는 별명까지 만들어낸다. 발도 상당히 빨랐고 작전 수행 능력도 최고 수준이었다. === '''[[박정태]]''' === ||124경기 출장 / 타율 .335(2위) / 149안타(2위) / 14홈런 / 79타점(5위) / 91득점(4위) / 7도루|| 탱크 박정태는 .335에 14홈런, 그리고 '''43개의 2루타'''를 쳐내며[* 이 기록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한시즌 최다 2루타였으나, 2016 시즌 [[최형우]]가 이 기록을 뛰어넘었다(2016년 9월 15일 현재 시즌 44 2루타).] 소총군단이란 비웃음을 뭉개버린다.[* 그렇다고 소총이 아니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롯데의 팀홈런은 68개로 최하위였다.] === '''[[김민호(1961)|김민호]]''' === ||118경기 출장 / 타율 .322(4위) / 133안타 / 16홈런 / 88타점(4위) / 69득점 / 5도루|| 자갈치 [[김민호(1961)|김민호]]는 타율 .322 16홈런, 28개의 2루타(2위)에 88타점을 기록하며 4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완수. 특히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한방을 터트리는 능력이 굉장했다. 1992년 [[해태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1회초 상대선발 [[문희수]]로부터 기록한 3점짜리 결승 선제홈런,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1회에 기선을 제압했던 선제 2타점 적시타등 을 보면 그의 클러치 능력을 알 수 있었다. === '''[[김응국]]''' === ||119경기 출장 / 타율 .319 / 128안타 / 10홈런 / 79타점(5위) / 76득점 / 29도루(4위)|| 호랑나비 김응국은 뛰어난 타격능력을 바탕으로 2년연속 3할 타율과 프로 첫 두 자리 수 홈런[* 이후 은퇴할때까지 2자리수 홈런 친해가 없다.], 12개의 3루타(2위)를 기록하고 29도루를 기록한 빠른 발까지. 수비능력도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 남두오성의 향수 == 아직도 많은 [[부산 갈매기]]들은 남두오성에 하악거리고 있다. 2010시즌에서 제2의 불꽃타선(팀타율 0.288 팀 홈런 185개)을 볼 수 있었나 싶었지만....'''불(火)펜'''때문에 [[망했어요]]. 반대로 2012시즌에서는 불펜이 진짜 불펜이 됐는데 빠따가 남두오성 이전의 소총부대로 돌아왔다... == 은퇴 이후 == 하지만 의외로 선수들의 끝이 안 좋았다. [[이종운]]은 [[1997년]] 시즌을 마치고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어 쓸쓸히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김민호(1961)|김민호]]도 [[199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이듬해 팀에 의해 정리당하고 은퇴, [[박정태]]는 이후 [[롯데 자이언츠]]가 대놓고 은퇴를 시키려고 FA때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협상을 했고, 은퇴를 당할 위기에 몰렸다가 막판 간신히 FA계약으로 살아남았다. [[전준호]]는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해서 현대왕조의 일원이 되었으나, 연봉협상 잡음 끝에 팀을 나가서 롯데에서의 끝은 안 좋다. [[전준호]]는 [[SK 와이번스]]의 주루코치를 맡다가 [[미국]]에서 연수를 받은 후 [[NC 다이노스]]의 주루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NC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지도자로서도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김민호(1961)|김민호]]는 동의대 감독을 했다가 [[양상문]] 시절에는 2군 타격코치를 맡았었고 이후 부산고 야구부 감독을 거쳐 롯데의 2군 타격코치를 맡았었다.그리고 2015년부터 1군 수석코치 자리를 맡게 되었지만 [[이종운]] 감독과 더불어 쌍으로 까였고 시즌 끝나고 잘렸다. [[박정태]]는 2004년 은퇴 이후에 2군 타격코치를 했으며 2010~2011년은 2군 감독을 했으며 2012년에는 롯데의 1군 타격코치를 하다가 사퇴하고 KBO 육성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다만 타격코치로서의 평은 좋지 못한 편이다. [[김응국]]은 2003년 은퇴해 1군 주루코치, 현대-우리의 2군 타격코치로 있었으며 부산고, 김해고 감독을 하다가 롯데의 1군 외야코치로 들어왔다. 다만 이쪽도 선수들의 뇌주루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고 2015시즌 끝나고 [[이종운]] 감독과 같이 잘렸으며 [[한화 이글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 중 가장 존재감이 없었던 [[이종운]]은 경남고 야구부 감독을 오랫동안 맡고 있다가 롯데에 복귀해 코치를 맡은 후 2015년부터 롯데의 ~~[[감동님|델동님]]~~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제 2의 [[백인천]] 같은 악평만 들었으며 결국 1년만에 경질되었다. 남두오성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