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이 문서는 [[일본 제국]]의 위임통치령이었던 남양군도에 대한 문서입니다. 오세아니아의 지리에 대해서는 [[미크로네시아]] 문서를, 현재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국가에 대해서는 [[미크로네시아 연방]] 문서를 참고하세요.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미크로네시아|미크로네시아의 역사]] || ||<:> [[독일령 뉴기니]] ||<:> {{{+1 →}}} ||<:> '''남양군도''' ||<:> {{{+1 →}}} ||<:> [[태평양 제도]]|| [include(틀:일본 제국의 외지)] [include(틀:위임통치)] [목차] ||||<tablealign=right><:> {{{+1 '''남양군도'''}}}[br]'''南洋群島 '''[br]'''South Pacific Mandate'''||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9/Merchant_flag_of_Japan_%281870%29.svg/1000px-Merchant_flag_of_Japan_%281870%29.svg.png?width=130||<:>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f/Emblem_of_South_Pacific_Mandate.png?width=100|| ||<width=50%><:> 국기 ||<:> 휘장[* [[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C%96%91_%EA%B5%B0%EB%8F%84#/media/File:Emblem_of_South_Pacific_Mandate.png|이미지 출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7/League_of_Nations_mandate_Pacific.png|| ||||<:>남양군도 지도(1번)|| ||<:> 위치 || 남양군도[br]* [[팔라우]][br]* [[미크로네시아 연방]][br]* [[마셜 제도]][br]* [[북마리아나 제도]]|| ||<:> 수도 || [[코로르]][* 현재 팔라우의 최대도시이다.] || ||<:> 정치체제 || [[위임통치|국제연맹 위임통치령]]|| ||<:> 군주 || [[덴노]]|| ||<:> 언어 || [[일본어]][br][[오스트로네시아어]] || ||<:> 성립 이전|| [[독일령 뉴기니]]|| ||<:> 멸망 이후|| [[태평양 제도]]|| == 개요 == [[일본 제국]]은 [[1914년]] 9월~10월 사이 [[독일 제국]]의 속령이었던 미크로네시아[* 마리아나, 트럭, 팔라우 제도]를 점령하였다. 정식명칭은 '''남태평양 위임통치령'''이다. 일본에서는 내남양(內南洋)이라고도 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1919년]] 발효된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하여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남양군도는 공식적으로 [[일본 제국]]의 [[위임통치|위임통치령]][* 위임통치령(mandate)은 [[국제 연맹]]이 해당 통치 지역의 복지, 개발을 위해 위임국에게 위탁한 지역을 말한다. 즉 남양군도는 일본의 다른 식민지들과는 그 위치가 달랐다. 예를 들어 일본은 남양군도에 대한 위임통치 상황을 매년 국제연맹에 보고, 심사를 받아야 했다. - 조정우, "제국일본의 식민지 개발 구상과 군사주의", 2015, p. 81] 이 되었다. [[국제연맹]]이 설정한 위임통치 분류는 C형(Class C)이었다. == 역사 == 영토확장에 야욕에 불타던 [[일본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참전하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은 이제 막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후발주자였고, 기존의 열강들에 비해 재정적, 군사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 영국도 동남아 지역에서 독일 제국군을 봉쇄해야 했기 때문에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동맹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1914년]] 일본 제국은 산둥과 함게 남양군도를 점령하였다. 이후 [[1915년]] [[1월]]에는 21개조 요구(二十一個 條項)를 발표하였다. 21개조 요구는 일본 제국의 권익 확대를 위해 중국에 요구한 것으로, 일본 제국이 소유한 만주 남부의 이권을 확장하고, 독일 제국이 가지고 있던 산둥 [[조차지]]를 일본 제국에 이양하는 등 대단히 [[제국주의]]적인 요구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제국에 비해 약세였던 중국은 일본 제국의 외교적 압박에 [[1915년]] [[5월]] 이 요구를 승인하게 된다. [* 이 21개조 요구가 원인이 되어 훗날 중국판 [[3.1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5.4 운동]]이 중국 전국에서 발발한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발효되어 패전국인 [[독일 제국]]이 가지고 있던 식민지들이 승전국들에게 배분되었다. 이에 따라 남양군도는 [[1919년]] 6월, 위임통치령의 형태로 일본 제국에게 배분되었다. [[1922년]] 4월에 일본 제국은 이곳에 [[남양청]](南洋廳)을 설치하였다. 그 전까지는 남양군도는 사실상 [[일본 해군]]의 군정체제나 다름이 없었으나 남양청이 설치된 이후에도 남양군도는 실질적으로 [[일본 해군]]의 관할이었다. 1920년대부터 일본 해군은 남양군도의 주요 섬에 군사시설을 설치하였다. 이는 미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 해군에 의해 항만시설, 해군기지, 비행장 건설이 이루어졌다. 1930년 대부터 일본인 이주민이 크게 늘어나 남양흥발주식회사(南洋興發株式會社), 남흥수산, 남양석유 등 일본의 민간기업이자 준(準) 국책기업이 남양군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931년]] 일본 [[관동군]]에 의해 [[만주 사변]]이 발발했다. 일본 제국 정부의 방침에 반기를 든 [[관동군]]이 독자적으로 감행한 이 전쟁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은 만주를 영유할 수 있게 되었으나, 열강과의 협의 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만주를 함부로 병합할 수 없었다. 위임통치령 형태로 소유하려고 해도 일본 제국이 독자적으로 감행한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국제연맹]]이 승인해 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본 제국은 이곳에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수립했으나, 국제연맹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1935년]] 일본 제국이 [[국제연맹]]에 탈퇴하였다. 이런 급격한 정세는 남양군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남양군도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이었으므로 '일본 제국이 국제연맹에서 탈퇴한다면 남양군도를 다시 반환해야 하는지' 여부가 국내외에서 문제가 되었다. 이는 국제연맹이 일본의 남양군도 위임통치는 계속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이로인해 국제연맹에서 일본 제국이 탈퇴하였음에도 국제연맹은 일본 제국의 남양군도 통치를 계속 감시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 일본 제국은 남양군도를 사실상 다른 식민지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1936년]]에는 일본의 국책회사(國策會社)인 '남양척식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1939년]]에는 남양군도에 제4함대를 설립,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41년]] 일본군이 [[진주만 공습]]을 시작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연합군과의 격전지가 되기도 하였다. [[1944년]] [[6월 15일]] 미군은 남양군도 사이판에 상륙했고, 동년 [[6월 19일]] 마리아나 해전이 발발, [[일본 해군]]은 여기서 패배함으로써 사이판에 일본 해군은 섬멸되었다. 6월 말에는 [[대본영]]이 사이판을 포기함으로써 일본의 전선은 더욱더 후퇴하였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남양군도 티니안 하고이 비행장에서 [[리틀보이]]를 실은 [[B-29]]를 발진하였고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다. 이미 전쟁은 [[일본 제국]]의 패배로 결정되었고, [[8월 15일]] 마침내 일본 제국이 항복함으로써 전쟁은 종결, 남양군도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미국]]의 [[신탁통치|신탁통치령]]인 [[태평양 제도]]가 되었다. == 산업 == [[1921년]] [[11월]]에 설립된[* 남양청이 [[1922년]]에 설립되었으므로 남양청의 설립보다 빨랐다.] 남양흥발주식회사는 [[남양청]]으로부터 [[사탕수수]] 독점권을 부여받아 [[사탕수수]]를 재배했으며, [[전분]], 인광, 수산물 등을 생산하였다. 남양청의 전폭적인 후원아래 남양흥발은 세계상품인 설탕의 주요 생산지가 될 수 있었다. 남양무역은 해운업, 야자 재배를 수행했다. 또한 남양청과 [[조선총독부]]가 남양흥발주식회사와 함께 추진한 '남양농업이민'에 의해 남양군도에도 조선인 이주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사탕수수, 카사바 재배 및 무수알코올을 생산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열악한 음식과 주거환경, 무더위로 인해 이들 이주 조선인들의 생활은 참혹했으며, 이때문에 [[1919년]]에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3.1 운동]]과의 연관성은 [[추가바람]]) [* 이 폭동은 일본 제국이 남양군도 통치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할 정도로 파장이 컸는데, 남양군도는 일반 식민지가 아니라 위임통치령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태평양까지 확장하는 것을 경계한 서방(미국, [[호주]], [[네덜란드]] 등)은 일본 제국의 통치를 유심히 주시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들의 폭동은 자칫 일본제국의 통치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참고 자료 == * 조성윤, "제국 일본의 남양군도 지배와 연구동향", 2010. * 조정우, "제국일본의 식민지 개발 구상과 군사주의", 2015 * [[http://theme.archives.go.kr/next/government/viewGovernmentArchives.do?id=0001565135|조선총독부 기록물 데이터베이스, 남양농업이민관계철]] == 관련 문서 == * '''[[남양청]]''' - 일제가 남양군도를 통치하기 위해 세운 기관. 남양군도 지청, 행정구역, 장관, 행정 등은 이 문서를 참고. * [[제1차 세계대전]] * [[제2차 세계대전]] * [[위임통치]] * [[포츠머스 조약]] * [[베르사유 조약]] * [[만주 사변]] * [[라바울 속요]] [[분류:오세아니아의 역사]][[분류:일본 제국]][[분류:위임통치]]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위임통치 (원본 보기) 틀:일본 제국의 외지 (원본 보기) 남양군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