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항목 : [[중국사 관련 정보]] [include(틀:중국의 역사/260BC)] [목차] == [[중국]] [[서주]]시대부터 존재하던 나라 魯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중국사 관련 정보|중국의 역사]]''' || ||<|2><:> [[서주#s-1|서주]] ||<|2><:> {{{+1 →}}} ||<:><-3> '''[[춘추전국시대]]''' || ||<:><#fbc4c4> '''노''' ||<:> {{{+1 →}}} ||<:> [[초나라#s-1.1|초]] || 지금의 [[산둥 성]]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조는 주공 단의 장남인 백금이고 수도는 곡부다. 주공 단은 [[주나라]] 원로 관직인 주공이 되어 주문공으로 일컬어지며 장남 백금에게는 노나라를 주고 차남 군진에게는 자신의 주공 자리를 주니 그가 주평공이다. 법과 풍속을 지나치게 엄격하고 예의를 중시[* 제와 노나라에 관련된 일화라면 [[태공망]]이 제로 백금이 노로 갔는데 백금은 법과 예법을 엄격하게 하여 3년이 걸렸고 태공망은 그 지역에 맞게 새로 정비하여 간소화하고 3개월이 걸렸다. 이를 듣고 주공 단이 노는 제에게 꼼짝없겠구나 하며 중얼거렸다.]하였으며 각지의 국가들의 전쟁을 중재하는 등의 난세와는 맞지 않는 행동을 보여주었으며 맹손씨, 계손씨, 숙손씨 등의 삼환[* 노나라 희공이 환공의 아들들을 제후로 봉했는데 이들이 삼환의 시조다. 경보는 맹손, 숙아는 숙손, 계우는 계손이란 성을 받았다. 희공은 장공의 아들로 환공의 손자다.]의 권력다툼으로[*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군주가 나섰다가 쫒겨난 사례도 있다. 공자가 살아있던 시절, 노소공은 후소백을 비롯하여 계평자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과 함께 계평자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결국 숙손씨가 계평자를 돕고, 관망하던 맹손씨도 계평자를 돕게 되어 결국 노소공은 제나라로 도망가게 된다. 결국 삼환은 원공 때 몰락한다.] 나라가 쇠퇴하고 [[초]](楚) 고열왕 때 멸망한다. 하지만 마지막 군주였던 경공의 6대손였던 공자 관을 [[한]](漢)나라 평제때 찾아내 제후로 봉했다. [[공자]]의 출생지인 나라이기도 하다. 공자 말고도 묵자 등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나라로 학문적으로는 제법 주목할 만한 나라다. 현대 중국에서는 성(省)별로 그 지역의 옛 나라 이름을 따서 자동차 번호판을 단다. 산둥 성의 자동차 번호판이 노(魯)되시겠다. 정작 강국이었던 제(齊)는 무시되는 [[안습]]한 상황. 하지만 노나라는 산둥 성에 안착해 있었고 제나라는 [[허베이 성]]과 산둥 성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대표하는 나라가 노나라인 건 맞다. == [[중국]] [[춘추시대]]에 세워진 나라 潞 == [[춘추시대]]에 적적(赤狄)족의 별종이 세운 국가라고 하며 [[진(춘추오패)|진나라(晉)]]에게 멸망했다. [[분류:춘추전국시대/국가]]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중국의 역사/260BC (원본 보기) 노나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