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함목 : [[대한민국 국군/사건사고]], [[사건 사고 관련 정보]], [[흑역사/목록/국방]] [include(틀:사건사고)] [[대한민국 국군]]의 [[흑역사]]. [[530GP 사건]]과 함께 부조리한 [[똥군기]]와 [[군대]] 문화의 병폐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 어떤 의미에서는 '''똥군기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문자 그대로 '''진짜로 똥을 가지고 군기를 잡으려던''' 어이없는 사건이었으니까. [목차] http://timetree.zumst.com/2014/06/23/21/76913574a7f04ba3a7c046724772ed91.jpg 문제의 시발점이 된 편지 http://dn.joongdo.co.kr/images/article/2005/01/25/200501250012_01.jpg 현장조사를 하는 당시 [[열린우리당]] 국방위 소속의원(김성곤 의원) == 개요 == '''2005년''' 1월 10일 경 [[논산]]의 [[대한민국 육군]] [[육군훈련소]] 29[[연대(군대)|연대]] 11[[중대(군대)|중대]] [[중대장]] 이경진 [[대위]][* 학사 35기 ]가, 야간[[점호]] 준비 중 좌[[변기]]에 [[대변]]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는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 분노하여 '''[[훈련병]] 192명에게 남아있던 인분을 먹도록 강요'''한 사건. 이 사실은 열흘 후 한 훈련병의 [[편지]]를 통해서 알려지게 된다. == 여파 == 그러나, 이에 대해 군 소식지인 [[국방일보]]는 사건이 외부에 공개된 20일로부터 4일이 지난 24일에야 특별기고에서 언급했을 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아 이런 현상에 대해 군의 폐쇄성과 제 식구 감싸기 행동이라는 비판이 있다. 특히, 제보자의 편지 내용에는 언론에 널리 알려달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사건을 취재한 [[MBC]] 사회부 백승규 [[기자]]는 육군훈련소에서 일부 사실을 확인을 해 준 [[정훈]][[참모]]의 말을 들은 뒤, 얼마 안되어 허평환(육사 30기) 육군훈련소장([[소장]])이 자신에게 '''"[[이뭐병|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애국이다. 군이 많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청탁을 하는 막장짓거리를 했다. 그러나, 백승규 기자는 '''"오히려 알리는 게 [[애국]]이라고 설득하고 보도하게 된 것이다."'''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렇게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보도되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5/1934968_13457.html]] 그리고 군 내외부 모두 발칵 뒤집혔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도 훈련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등 당시 육군훈련소는 여러모로 끔찍한 사건이 많은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인분을 먹이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 각계각층에서 분노의 여론이 쏟아졌고, 중대장은 구속되어 형사 처벌을 받게 되었으며, 윤광웅[* 해사 20기. 해군 중장 출신]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머리숙여 사과를 했다. 이런 문제에서는 [[군기]]를 내세우던 예비역들조차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군대가 부조리가 많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인분을 먹이는 것은 엄연히 지나치게 도를 넘은 행위였고, 무엇보다 그 행위를 시킨 것이 [[병(군인)|병]]들이 아니라 그런 일을 막아야 하는 [[장교]]였다는 사실 자체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부 정신줄 놓은 똥군기 숭배자들은 똥이 아니라 무엇을 먹이더라도 군기를 잡아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정작 똥 처 드시라고 하면 인권 타령하면서 난리를 친다 그렇게 잘난 똥군기면 자기들이 먹든가 하여간 똥군기 숭배자들치고 정신력은 더 약하다는게 함정~~ 결국, 2005년 2월 3일 [[육군본부]]는 이 사건의 특감결과를 발표하고, 책임을 물어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은 훈련소장 허평환 [[소장]]에게 경고조치를 내리고, [[연대장]]([[대령]]), 교육대장([[소령]]) , 지원과장(대위), 교육과장(대위), [[분대장]]([[병장]]), 교관([[중위]]) 등 14명을 각각 징계위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또한 사고 발생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훈련소 [[헌병]]대 파견대장([[중령]])과 수사관([[준위]])은 모두 교체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가혹행위 가해자인 중대장(대위)보다 하위 계급인 분대장(병장)을 징계를 한 것은 하위 계급자의 반대가 자칫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 내부사정을 감안할 때에 너무 과도한 징계라는 비판이 있다. 이 사건 이후에 노후된 논산 훈련소의 시설들이 대대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비데]]가 설치된 것도 더욱 늘어나게 된다. 당연하지만, 이 때 전국적으로 개망신을 당하고 신뢰가 바닥을 친 [[육군]]은 이미지 회복을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몇 달 뒤 '[[530GP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쌓인 병폐가 또 다시 터져서 한동안 육군은 엄청나게 이미지에 타격을 받게 된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연달아 2개나 터진 육군이 대대적인 내부변화에 나서게 되어서 점점 군대문화가 많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 그나마 좋은 일이다. --[[안전불감증|꼭 뭐가 하나 크게 터져야 바뀌는 것도 지겹다.]]-- 몇몇 이전 세대 전역자의 증언에 의하면, 타 부대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이전에도 몇 건인가 더 있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크게 다뤄진 것도 육군훈련소라는 큰 시설에서, 그것도 2005년에 훈련병을 대상으로 강요되었기 때문. 1970~1980년대의 어둠은 생각보다 깊고 깊다. == 긍정적 효과 == 비록, 이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은 불행한 것이었으나 그 이후의 영향은 비교적 긍정적인 것이었다. '''"군대는 당연히 사람을 괴롭히는 곳이라는 잘못된 인습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군 지휘부 차원에서 시작된 정화운동을 하게 된다. 우선 과거 [[일본군]]처럼 사람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던 분위기의 훈련소의 모든 교관과 모든 조교가 존칭을 사용하는 식으로 변화하였으며, 일선 부대에서는 '''"[[소원수리]] 제도 등을 강화해서라도 강력하게 [[가혹행위]]를 근절하자."'''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게 된다. 비록, 아직도 군에서 [[구타]] 및 [[가혹행위]]와 폭언 등이 사라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육체적인 폭력이 상당부분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무엇보다 군의 공식적인 태도만큼은 병들을 인간으로 존중해주겠다고 바뀐것이 가장 큰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그러니까 그 전까지 병들은 인간이 아니라 가축만도 못한 무언가 였다는 뜻이다-- 이 사건 이후에는 육군훈련소 분대장(조교)들이 훈련병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는 것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 그 외 == 원칙적으로 당시 훈련병들은 훈련소에 있을 동안 자대배치(공익의 경우 훈련소 퇴소)가 될 때까지 전화 사용이 불가였으나, 이 사건이 터져버리고 당시 입소해있던 전국의(옆사단인 32사단의 경우로, 전국 모두인지는 확실치 않으니 확인후 추가바람.) 다른 훈련병들은 분대장들의 통솔 하에 의무적으로 집에다 자신은 아무 일 없다는 안부전화를 드려야만했다!(그것도 군 사무실에서! 집에 보호자가 없어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나머지 다 전화하고 집에서 전화를 받을때까지 그날 내내 돌렸다는 후문이... --[[행정병]]들 [[지못미]]--) [[분류:군사 사건사고]]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사건사고 (원본 보기) 논산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