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4eae47> [[봉황|https://41.media.tumblr.com/7f34332ee7a0169d598048f96ada5b9a/tumblr_o4a4woaUar1sqk8veo3_r1_400.png?width=50]] [br] '''{{{+1 [[백제/왕사|{{{#FAFAD2 백제의 역대 국왕}}}]]}}}''' || ||<width=30%><:> 1대 [[온조왕]] 부여온조 ||<:> {{{+1 ←}}} ||<:><width=30%><#69D567> '''2대 다루왕 부여다루''' ||<:> {{{+1 →}}} ||<:><width=30%> 3대 [[기루왕]] 부여기루 || ||<tablealign=center><:> '''[[시호]]''' ||||<:> 다루왕(多婁王) || ||<:> '''[[성]]''' ||||<:> 부여(扶餘) || ||<:> '''[[휘]]''' ||||<:> 다루(多婁) || ||<:> '''생몰년도''' ||<:>음력||? ~ 77년 9월 (미상) || ||<:> '''재위기간''' ||<:>음력||28년 2월 ~ 77년 9월 (49년) || [목차] == 개요 == [[백제]]의 제2대 국왕ㆍ[[건길지]]이다. 아버지인 [[온조왕]] 10년에 태자로 책봉되고, 재위 28년만에 세상을 떠나자 왕으로 즉위했다. 이름인 다루에 대해서는 '지배자'를 뜻하는 당시 말이며 몽골어의 '다루(daru)'가 어원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다루왕을 비롯해 뒤를 이은 [[기루왕]], [[개루왕]]이 모두 [[부여]]의 왕 해부루와 같은 婁(별 이름 루)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들 3루왕을 해부루→우태→[[비류]]→다루왕→[[기루왕]]→[[개루왕]]으로 이어지는 소위 '비류계'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다루왕과 '루'자 돌림 왕들은 [[온조왕]]과는 다른 왕통이며, 후에 [[초고왕]]이 즉위함으로써 비류왕계 왕들이 물러나고 다시 온조왕계 왕들의 시대가 열렸다고 본다. 선왕인 [[온조왕]]과 마찬가지로 [[말갈]]과 미친듯이 싸우면서도 계속 내정을 살피려 한 왕이다. == 신라와의 전쟁 == 다루왕은 [[백제]]의 왕들 중 최초로 [[신라]]와 칼을 맞댄 왕이다. 63년 겨울 음력 10월에 지금의 [[청주시|청주]]인 낭자곡성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신라]]에 사신을 보내 만나려고 했지만, [[탈해 이사금]]이 씹어버린 걸 계기로 악연이 싹트게 된다. 64년 가을 음력 8월에 군사를 보내 [[신라]]의 와산성을 공격하여 이겼다. 하지만 같은 해 겨울 음력 10월에 또 [[신라]]의 구양성을 공격하였으나 신라의 탈해 이사금이 [[기병]] 2천명을 보내는 바람에 졌다. 그후 66년 다시 와산성을 빼앗고 수비병 2백을 주둔시켰으나 신라에게 곧 다시 빼앗겼다. 70년에 다시금 [[신라]]를 침공하였으나 기록이 누락돼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74년에는 [[신라]]의 변방을 공격했으나 [[탈해 이사금]]이 군사를 보내는 바람에 졌다. 75년 음력 10월에 또 [[신라]]의 와산성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그러나 76년 가을 음력 9월에 [[신라]]가 군사를 보내는 바람에 와산성을 다시 빼앗겼다. 하지만 정말로 다루왕 시대에 [[백제]]가 [[신라]]와 전쟁을 벌일 수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들이 많다. 일단 [[백제]]는 아직도 [[한강]] 유역에서 [[낙랑]], [[말갈]] 등과 투닥거리고 있었으며 [[신라]] 역시 [[일본|왜]], [[금관국|구야국]] 등과 싸우기 바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둘 다 서로 마주할 수 있는 [[소백산맥]] 일대까지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기록들을 해명하기 위한 수많은 썰들이 쏟아졌는데,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신라]]가 속한 [[진한]]과 [[백제]]가 속한 [[마한]] 사이의 충돌. * [[소백산맥]] 일대의 철광을 두고 [[백제]]와 훗날 [[신라]]에 합류하는 [[김알지|김씨 족단]]의 전쟁. * [[백제]]와 [[신라]] 쪽으로 남하하던 진국계의 전쟁. * 그냥 후대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의 전쟁을 소급시킨 기록. * [[그런 거 없다]]. 그냥 헛소리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의 주장 마한 54개국을 거느리는 마한과 진한 소국 하나인 신라가 어떻게 전쟁을 하냐면서 전쟁을 부인했다.] ~~간단하고 좋네~~ * [[백제]]의 경우는 [[마한]]의 소국, [[신라]]의 경우는 [[진한]]의 소국과 싸운 기록인데 전부 [[백제]]와 [[신라]]로 기록했다. * 아니다. 이 기록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단지 이때의 전쟁은 일시적 무력충돌에 가까운 것이지 후대의 정복전쟁과는 다르다.[* [[임용한]]의 '한국고대전쟁사'에서의 주장] 사실 이 전쟁 기록들은 [[김부식]]과 [[삼국사기]]의 찬자들이 신라본기에만 있던 기록을 백제본기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백제]]보단 [[신라]]의 병력 상황 등이 더 자세히 묘사되며, [[신라]]측의 사람 이름들만 주구장창 등장하기 때문이다. == 삼국사기 기록 == 一年春二月 다루왕이 즉위하다 二年春一月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하다 二年春二月 천지신명에 제사지내다 三年冬十月 흘우가 말갈과 싸워 대승을 거두다 四年秋八月 곤우가 말갈과 싸워 크게 이기다 四年秋九月 횡악 아래에서 사슴을 사냥하다 六年春一月 기루를 태자로 삼고 죄수를 사면하다 六年春二月 주군에 명하여 쌀농사를 짓도록 하다 七年春二月 흘우를 우보로 임명하다 七年夏四月 동방에 붉은 기운이 나타나다 七年秋九月 말갈이 마수성을 침입하다 七年冬十月 말갈이 병산책을 습격하다 十年冬十月 흘우와 진회를 좌보와 우보로 임명하다 十年冬十一月 지진이 일어나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나다 十一年 술 빚는 것을 금하다 十一年冬十月 백성을 위무하고 곡식을 나눠주다 二十一年春二月 왕궁의 홰나무가 저절로 말라죽다 二十一年春三月 좌보 흘우가 사망하다 二十八年 가뭄이 들어 죄수를 사면하다 二十八年秋八月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입하다 二十九年春二月 우곡성을 쌓고 말갈을 방어하다 三十六年冬十月 사신을 보내 신라왕을 만나기를 청하다 三十七年 신라의 와산성과 구양성을 공격하다 三十九年 와산성을 공격하여 빼앗다 四十三年 군사를 보내 신라를 공격하다 四十六年夏五月 일식이 일어나다 四十七年秋八月 장수를 보내 신라를 공격하다 四十八年冬十月 와산성을 함락시키다 四十九年秋九月 와산성을 신라가 회복하다 五十年秋九月 다루왕이 죽다 [[분류:백제의 왕]] 다루왕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