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항목 : [[이순신]], [[임진왜란]], [[전투 목록/한국사]] ||||||<table align=center><-5><#0063ff> '''{{{#white 이순신의 전투 목록}}}''' || ||<width=30%> [[사천 해전]][br](1592년 5월 29일) || {{{+1 ←}}} ||<width=30%><#000080> '''{{{#white 당포 해전}}}'''[br]{{{#white (1592년 6월 2일)}}} || {{{+1 →}}} ||<width=30%> [[당항포 해전|제1차 당항포 해전]][br](1592년 6월 5일) || ||<tablealign=right><-3><#030> {{{#ffffff 당포 해전}}} |||| ||||||<#2e8b57> {{{#ffffff 날짜}}} |||| ||||||<#8fbc8f> 1592년 음력 6월 2일 |||| ||||||<#2e8b57> {{{#ffffff 장소}}} |||| ||||||<#8fbc8f> 조선 경상도 통영 당포 앞바다 |||| ||<#2e8b57><:> ||<#ff0000> {{{#ffffff 교전국1}}} ||<#0000ff> {{{#ffffff 교전국2}}} || ||<#2e8b57><:> {{{#ffffff 교전국}}} ||<#f08080> 조선 왕국 ||<#6495ed> [[전국시대(일본)|쇼쿠호 일본]] || ||<#2e8b57><:> {{{#ffffff 지휘관}}} ||<#f08080> 충무공 이순신[br]원균[br]권준 ||<#6495ed> [[가메이 고레노리]][br]구루지마 미치유키† || ||<#2e8b57><:> {{{#ffffff 병력}}} ||<#f08080> 전선26척 ||<#6495ed> 전선21척 || ||<#2e8b57><:> {{{#ffffff 피해 규모}}} ||<#f08080> 불명 ||<#6495ed> 21척 격침 || ||||||<#2e8b57><:> {{{#ffffff 결과}}} |||| ||||||<#8fbc8f> 조선 수군의 승리. |||| [목차] == 당포에서 적을 분멸 하다 == 1592년(선조 25) 5월 29일부터 6월 1일 아침까지 전라좌수영의 [[이순신]] 함대를 주축으로 한 조선 연합 수군은 사천포해전을 통해 왜군 함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 명을 사살하였다. 같은 날 정오 무렵 이순신 함대 전선 23척과 [[원균]]이 이끄는 경상우수영 전선 3척은 삼천포 앞바다를 거쳐 사량도에 이르러 이곳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오전 8시 척후선으로부터 당포 선창에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 함대는 곧 당포(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앞바다로 나아갔다. 당포 선창에는 왜군 대선 9척, 중선·소선 12척이 매어 있었다. 9척은 [[판옥선]]과 크기가 같을 정도로 컸다고 하며 그 가운데 가장 큰 배에는 붉은 일산이 세워져 있고, 장막 안에는 왜장 도쿠이 미치토시가 앉아 있었다. 아군 함대가 접근하자 왜군은 조총을 쏘며 맞섰다. 아군은 개의치 않고 [[거북선]]을 앞세워 현자총통을 비롯한 천자·지자총통을 쏘아 대는 한편, 뱃머리로는 왜장선을 들이받으며 격파하였다. 이어 화포와 화살을 왜장선에 집중적으로 발사하였다. 이 와중에 왜장은 중위장 권준(權俊)이 쏜 화살에 맞아 쓰러졌고,[* 이 전투에서 구출한 포로에 따르면 도쿠이 미치토시는 처음 화살 1발을 이마에 맞고도 태연하게 있었지만 두번재로 쏜 화살이 가슴을 관통하자 그때서야 쓰러졌다라고 이야기 했다.] 사도첨사 [[김완]]과 군관 진무성이 적선에 올라(!!) 적장의 목을 베었다. 왜장 도쿠이 미치토시가 죽자, 왜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육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성과 == 왜선 21척은 모두 격침되었고, 많은 수의 왜군이 사망하였는데 정확한 수는 파악하기 어렵다. 이순신 함대가 제2차 출전에서 사천포해전에 이어 치른 두 번째 해전이다. 옥포·합포·적진포해전 등 제1차 출전까지 합하면 다섯 번째 해전이 된다. 적정과 지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북선을 앞세워 적의 대장선에 화력을 집중하는 이순신의 치밀한 전략이 돋보인 해전이다. 보통 이 전투에서 사망한 왜장이 가메이 고레노리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가메이가 히데요시에게 하사받아서 가메이의 이름이 쓰여 있는 황금 부채가 노획되었고 마침 적장을 하나 죽였기 때문에 '죽은 적장 이름이 가메이인가보다' 하고 판단했기 때문.[* 덤으로, 히데요시가 가메이에게 내린 것이기 때문에 받은 사람인 '가메이 류큐노카미'와 내린 사람인 '하시바 치쿠젠노카미' 양쪽이 부채에 쓰여 있었는데, 이걸 본 조선에서는 (한자는 판독이 가능하지만 일본식 고문이나 가나는 해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오해해서) '우리가 하시바라는 장수를 잡았나보다'하고 기록하기도 했다. '''하시바 치쿠젠노카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옛 성과 관직이다.'''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실은 도쿠이 미치토시(구루시마 미치유키,得居通年)[* 이 사람 동생이 역시 [[명량 해전]]에서 전사한 구루시마 미치후사다(...) ~~형제가 나란히 이순신에 시망~~]가 전사했다. 하지만 가메이가 당포 전투에 참전한 것과 탈탈 털린 것은 사실로, 이후 가메이는 1597년에 다시 수군을 이끌고 조선에 당도한 기록도 있다. 그는 세키가하라 전투때 동군에 참여하여, 영지를 보존했고 1612년에 노환으로 사망한다.[* 배한성의 고전열전에선 가메이가 사망한 것으로 연출했고. 가메이가 도요토미에게 받았다던 황금부채는 조정에 진상됐다가 1909년까지 조정에 보관됐는데 일본인이 훔쳤다는 카더라를 추가했다.] == 기타 == 여담으로 대선 9척의 크기는 판옥선에 준한다고 장계에 되어 있는데, 한 척에 대해서만 특별히 층각선이라는 것을 언급한 것을 보면 한 척이 [[안택선]]인 것이고 나머지는 대[[세키부네]]로 보인다. [[분류:해전]][[분류:임진왜란]] 당포 해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