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여행금지)] [Include(틀:프로젝트 문서, 프로젝트=나무위키 북한 프로젝트)] [include(틀:북한의 시설물)] [[분류:북한의 국보]] [[파일:attachment/daedongmoon.jpg]] 일제강점기의 대동문. 원형에서 다소 변형되어 있다. 大同門 == 개요 == [[평양]]시 이문동(里門洞)(북한 행정구역상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성문이다. [[북한]]의 [[국보]] 제4호. [[평양성]]의 동문(東門)으로 역사는 [[고구려]]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나 지금의 문은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누각이 1층이 중층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점이다. http://chang256.new21.net/images/dadongmunh00364_1.jpg 1층의 [[초서]]체 현판은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2층의 [[해서]]체 현판은 평안감사 [[박엽]](朴燁)의 글씨이다. 한편 揖灝樓(읍호루)라는 현판의 '읍호'는 문루에서 손을 내밀어 대동강의 맑은 물을 떠올린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이 문 바깥에 나루터가 있어서 동평양 쪽으로 가는 나룻배를 탈 수 있었다. 대동문 건너편 쪽이 선교(船橋)라고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대동문 옆 종각에는 평양종이 있는데, 이른바 북한 보물급문화재 제1호이다. 조선 말엽까지 시간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 일제강점기 == 일제강점기에 대동문은 부분적으로 많이 변형되었다. 문루 1층의 대가 좌우로 넓어지고, 창문이 설치되는 등... 현판 역시 다른 글씨체를 가진 것으로 바뀌었다. == 현재의 대동문 == http://korean.cri.cn/mmsource/images/2009/03/17/simiao.jpg [[한국전쟁]] 때 대동문은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파괴되고, 현재는 북한에서 복원해 놓은 것. 게다가 사진으로 비교해본다면 원래의 대동문보다 훨씬 작게 지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좌우의 문각 위치나 문루 2층의 창문 부분이 막혀있는 것을 보자. 위 사진에서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성벽의 높이는 대동강변을 향한 둑의 높이 때문에 이전보다 낮은것처럼 보인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북한의 시설물 (원본 보기) 틀:여행금지 (원본 보기) 틀:프로젝트 문서 (원본 보기) 대동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