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MLB)]], '''[[먹튀/야구]]''', '''[[유리몸]]''' http://losangeles.dodgers.mlb.com/la/photo/2004album/june/615dreifort.jpg?width=400 || 이름 || Darren James Dreifort || || 생년월일 || 1972년 5월 2일 || || 국적 || 미국 || || 출신지 || [[캔자스]] 위치타 || || 체격 || 188cm, 95kg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93년 1라운드 전체 2순위 [[LA 다저스]] 지명 || || 소속팀 || [[LA 다저스]] (1994~2005) || [목차] == 소개 ==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 선수로, '''[[먹튀]]와 [[유리몸]]계의 전설로 남을 선수.''' == 선수 시절 == 위치타 주립대학 시절, 마운드에서 26승 5패, 17세이브, 2.24의 가공할만한 방어율과 '''타석'''에서는 314타수에서 '''0.318의 타율과 25홈런, 89타점'''을 올리며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와 로터리 스미스 어워드[* 대학 야구선수들한테 주는 최고의 상이다.]를 동시에 수상한다. 한마디로 투타만능이었는데,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는 사실상 [[마무리 투수]]/[[지명타자]]를 겸업하는 야수였기 때문에 투수로 들어올 것이냐 야수로 들어올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똑같이 대학에서 마무리 투수/지명타자를 하다가 들어온 사례는 [[토드 헬튼]]이 있다. 이쪽은 1루수를 선택해 1997년 데뷔 이후 2013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1993년도 드래프트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어 전체 2순위로 다저스에 지명되었으며, 데뷔 시즌인 1994년에는 [[박찬호]]와 함께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미국에서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로 간 선수는 1871년부터 약 140여년간 메이저리그 역사 이래 17명 뿐이다. 박찬호 역시 140년 역사의 17명 중 1명이다.]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된다. 당시 LA 다저스는 그를 [[선발 투수]]로 키울 것인지 마무리 투수로 키울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여기에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개입해 선발 투수로 뛰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는데, 스캇 보라스는 고객의 고액 계약도 잘 뽑아내지만 구단에 선수의 대우에 대해 으름장을 잘 놓기로 유명하다.] 강력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90마일 중후반대의 강속구와 고속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였지만, 선발투수로 뛰기에는 체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었으며 야수 겸업을 하느라 완성도가 떨어진 것 때문에 선발보다는 불펜 쪽에 적합하다는 평가였다. 그래도 98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 99시즌과 2000시즌에 각각 13승과 12승을 거두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드라이포트의 전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000시즌 이후 [[FA]]자격을 얻었는데, 사실 선발로서 평균자책점은 4점대로 썩 인상적이지 못했으나 당시 28세인 젊은 나이와 잠재력 등을 이유로 '''5년간 5,500만달러'''라는 거액에 재계약하게 된다. 드라이포트와 박찬호는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었는데,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케빈 브라운]]의 7년 1억500만 달러에 달하는 고액연봉 때문에 LA 다저스는 사실상 둘 중 한 명만 데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 해 먼저 FA가 된 드라이포트가 고액계약을 따냈기 때문에 LA 다저스의 페이롤이 심각하게 치솟았고 박찬호는 자진해서 연봉을 깎지 않는 한 다저스 잔류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 문서가 작성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하지만 박찬호 역시 텍사스 이적 후 역대 최악의 먹튀가 되었다~~ 이 계약은 그 자체로 칼럼니스트들의 [[평생까임권|무한 까임의 대상]]이었는데, 2001 시즌에 ~~예고된~~팔꿈치 부상으로 4승 7패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며 [[먹튀]]로서의 출발을 알린다. 게다가 2002 시즌에는 재활훈련으로 인하여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2003 시즌을 앞두고 다시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무릎과 엉덩이가 말썽을 일으키며 10경기 등판 4승 4패에 그쳤다. 다행히도 수술결과가 좋아서 2004 시즌에 돌아올 수 있었으나 선발 투수로 뛰기에는 무리였고, 결국 '''5,500만 달러짜리 [[중간계투]]'''[* 참고로 2014년 현재 역대 불펜투수 최고액 계약이 [[조나단 파펠본]]의 4년 5,000만 달러인데, 파펠본의 경우 FA였던데다 리그 최상급 클래스의 마무리였다.]가 되었다. 성적은 60경기 등판 1승 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44였는데, 50.2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을 63개나 잡아냈을 정도로 구위만큼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부상만 더 없었다면 괜찮은 불펜 투수로서 선수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엉덩이 수술과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2005년 시즌 후 계약기간이 끝나며 은퇴하게 되었다. '''물론 돈은 다 받았다.''' 통산 성적은 48승 60패 11세이브 ERA 4.36....희한하게 먹튀 치고 통산 방어율은 평균 수준이다.. == 기타 == 이후 드라이포트라는 이름은 먹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통하게 되었다.[* [[이상목]]의 별명인 DDSM의 DD가 대런 드라이포트의 약자다.(...)] [[분류:야구선수]] 대런 드라이포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