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정식 명칭: 대 푸가 B플랫장조 작품 133 (Große Fuge B-dur op.133/Great Fugue in B flat major, op.133) {{{#!html <iframe width="400" height="300" src="https://www.youtube.com/embed/XEZXjW_s0Qs"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알반 베르크]] 현악 사중주단의 실황 연주 영상.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은 과감하고 현대적인 해석을 많이 보여줘서 청자마다 호불호가 갈리는데 대 푸가를 포함한 베토벤의 일부 현악 사중주곡들에 있어서는 그 특유의 과감함과 역동성으로 좋은 평을 받는다. [목차] == 개요 ==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의 [[현악 4중주]]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크고 아름다운]] [[푸가]] 작품이다.~~베토벤이 작곡한 헤비메탈~~다만 이 곡이 단독 구상된 적은 없었고, 사실 [[현악 4중주 제13번(베토벤)|현악 4중주 13번]]의 마지막 악장으로 계획되었던 것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산가족~~따로 떨어져 출판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는 [[카핑 베토벤]]이라는 영화의 오프닝 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 이와 비슷한 경우는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의 안단테 파보리(Andante favori), 원래는 2악장에 넣으려고 했으나 소나타가 너무 길어져서 지루해 질 수 있다는 친구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이 곡은 단일곡으로 편성되었고 2악장은 짧은 서주가 있는 소나타 형식으로 대체되었다.] [[교향곡 제9번(베토벤)|교향곡 9번]]을 완성한 뒤 베토벤은 말년에 주로 현악 4중주의 작곡에 매달렸는데, 물론 현실적으로는 [[러시아]]의 부유한 [[귀족]]이었던 니콜라이 갈리친 공작이 베토벤에게 의뢰해 왔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 분야에서 자신의 마지막 걸작들을 남기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갈리친 공작을 위해 작곡한 현악 4중주는 [[현악 4중주 제12번(베토벤)|12번]]과 [[현악 4중주 제15번(베토벤)|15번]], 그리고 13번 세 곡이었는데, 첫 12번은 전통적인 4악장제였지만 15번에서 5악장, 13번에서 6악장 식으로 점차 규모가 확대되도록 구성되었다. 특히 13번의 경우 마지막에 15~18분이나 걸리는 대규모 푸가 악장을 넣어서 전체 연주 시간이 40~50분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4중주가 1826년 3월에 슈판치히 4중주단에 의해 초연되었을 때는 간주곡 격인 독일 춤곡 풍의 4악장과 느리고 감동적인 카바티나인 5악장 정도만이 대중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특히 6악장으로 설정된 이 푸가의 경우에는 당대 비평가를 비롯해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괴작]] 취급을 받았다. 베토벤 자신도 이런 여론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은데, 초연 후 베토벤을 찾아온 [[비올라]] 주자 칼 홀츠가 4~5악장이 앙코르를 받았다고 하자 "왜 푸가는 앙코르가 안됐는데?! 그게 됐어야지! 띨띨한 놈들 같으니!!"라고 신나게 까버렸다고 한다. 여하튼 이 곡의 난이도와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출판하겠다고 나선 이가 악보 출판업자였던 마티아스 아르타리아였는데, 다만 아르타리아도 그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푸가 악장이 너무 복잡기괴해서 그대로 출판하면 안팔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타리아는 이 늙고 괴팍한 작곡가한테 자기 의도를 그대로 털어놓으면 왠지 쳐발릴 것 같아서였는지(...), 1826년 4월에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푸가가 점차 인기를 얻고 있으며]], [[피아노]] 연탄용 편곡의 의뢰가 들어 왔으니 푸가만 출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보기 식의 요청을 했다. 베토벤은 이 제안에 응해 [[현악 4중주 제16번(베토벤)|마지막 현악 4중주]]를 작곡하면서 동시에 푸가 악장을 직접 편곡했고, 이 편곡판은 작품 번호 134번을 부여받고 따로 출판되었다. 하지만 아르타리아는 아직까지 현악 4중주를 원본 그대로 출판하기를 꺼리고 있었고, 결국 자신보다는 베토벤과 훨씬 면식이 있던 홀츠에게 '님 베토벤횽한테 이야기 잘 좀 해주셈'하고 부탁해야 했다. 물론 홀츠도 베토벤이 빡칠까봐 가능한한 외교적으로 돌려서 말했는데, 특히 새 악장을 써준다면 그건 그거 대로 아르타리아가 작곡료를 지불할 것이고 푸가와 4중주의 악보에 별도 인세가 매겨지므로 [[저작권]] 수입이 늘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베토벤은 이 제안에 응했고, 1826년 10~11월에 조카 칼을 데리고 그나이센도르프에 있는 동생 요한의 집으로 가서 요양하면서 새롭고 좀 더 평이한 6악장을 작곡해 아르타리아에게 보냈다. 아르타리아는 계약 대로 베토벤이 죽은 지 두 달 뒤에 새 6악장을 덧붙인 4중주와 푸가의 악보를 따로 출판했는데, 이 과정에서 푸가는 그 규모에 걸맞게 '대(大)'라는 수식어가 붙어 제목으로 고정되었다. == 곡의 형태 == 당시 현악 4중주의 마지막 악장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에 치밀한 구성과 드라마틱한 면모로 점철되어 있는데,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첫 24마디는 [[이탈리아어]]로 서주(Overtura)라고 되어 있고, B플랫장조 으뜸화음의 어느 음에도 해당하지 않는 솔(G)음을 기세좋게 켠 뒤 다소 무조 풍으로 거칠게 시작한다. 이어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두 번째 단편적인 악상이 나오고, 여기에 [[비올라]]와 [[바이올린]]이 번갈아 가며 대선율을 붙여 반복한 뒤 또 중단된다. 첫 푸가는 2중 푸가로, 바이올린이 조용히 제시하는 주제로 시작된다. 하지만 주제가 끝난 뒤 곧 부점 리듬으로 격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대선율이 붙으면서 격렬하고 복잡하게 진행된다. 여기에 셋잇단음표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또 다른 대선율이 붙는데, 이어 크로스 리듬, 당김음 등 리듬까지 복잡해지면서 기존의 [[대위법]] 체계를 거의 붕괴시킬 정도로 대담하게 진행된다. 이 격한 푸가가 한 차례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진정된 뒤 속도가 다소 느려지는 세 번째 대목으로 들어간다. 서주의 두 번째 악상에 대선율을 붙인 형태가 기본 악상이 되고 G플랫장조로 조가 바뀌어 진행되는데, 이 부분에서도 물론 푸가의 주제가 교묘하게 얽히는 등 대위법 기교를 포기하지 않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더 편안하고 때로는 명상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이렇게 완만한 분위기로 나가다가 갑자기 서주 첫머리에 나온 격한 리듬의 악상이 [[갑툭튀]]하면서 네 번째 대목이 시작된다. 분위기는 첫 푸가와 비슷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푸가는 아니고, 오히려 푸가 주제를 드라마틱하게 변형시키는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 분위기다. 게다가 여기에는 세 번째 대목에서 나온 서정적인 악상이 같이 얽히기도 하고, 자체적인 재현부까지 두는 등 사실상 소나타+푸가의 이종교배 격인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 종결부는 첫 푸가에 나온 대선율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끊기고, 이어 서주에서 제시된 가라앉은 분위기의 악상이 나오다가 맨 첫머리의 무조풍 악상이 또 튀어나오는 등 악상 제시 순서를 거꾸로 뒤집은 식으로 시작된다. 이어 다시 푸가 주제가 잠시 나온 뒤 짤막한 이행부를 거쳐 푸가의 첫머리를 변형한 악상을 연주하며 활기있게 끝맺는다. 이렇게 푸가라고는 해도 그 안에 [[교향곡]]이 압축된 듯한 엄청난 응집력을 갖고 있고, 18세기의 대위법 논리를 완전히 초월한 무지막지한 전개와 4중주단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팀워크, 연주자 개개인의 기교 수준까지 모든 것을 시험하는 듯한 곡이라서 지금도 난곡으로 손꼽힌다. ~~물론 21세기에 와서는 이런 곡을 아주 여유롭게 연주하는 아르디티 4중주단 같은 괴수들도 있지만~~ == 사후의 재평가 == 여타 후기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곡도 베토벤 사후 한참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후배들인 [[펠릭스 멘델스존|멘델스존]]이나 [[로베르트 슈만|슈만]]도 워낙에 복잡난해한 작품이다 보니 '아, 그거 대선배님의 걸작이죠'라는 요식 행위성 찬사만 보냈을 뿐이고 곡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런 [[넘사벽]]스러운 난이도가 연주 기술과 음악 어법의 발달로 조금씩 극복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에도 이런 경향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정도였고, 20세기에 와서야 [[아르놀트 쇤베르크|쇤베르크]][* 쇤베르크의 예술적 지우였던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가 "당신의 음악적 요람은 베토벤의 대푸가였다." 라고 말한 적도 있다.]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스트라빈스키]][* 지금도 현대적인,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현대적일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등이 곡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본격적인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다만 베토벤이 아르타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6악장을 교체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비록 베토벤 자신이 이 결정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의지]]라기 보다는 조카 칼의 [[자살]] 기도에 의한 [[멘붕]]이나 수입 개선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 푸가가 진정한 6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이 푸가가 그 자체로 완성도를 갖고 있고, 베토벤이 [[오페라]] [[피델리오]]를 위해 두 번째로 작곡한 서곡인 레오노레 서곡 제3번처럼 이전 1~5악장의 존재감마저 압도할 정도이므로 곡의 균형을 깨뜨렸다고 여기는 이들은 새로 들어간 6악장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를 전후해 베토벤의 원래 의도대로 카바티나 5악장 다음에 이 대 푸가를 6악장으로 연주하는 4중주단이 나오기 시작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이 1990년대에 내놓은 베토벤 전집 앨범의 현악 4중주 파트에서도 대 푸가를 6악장으로 놓고 새로 작곡된 6악장은 보너스 트랙처럼 뒤에 실어놓는 등 초연 당시의 모습 그대로 연주/녹음하려는 경우도 많아졌다. == 편곡 == 위에 쓴 것처럼 베토벤은 아르타리아의 제안에 따라 현악 4중주에서 피아노 연탄용으로 직접 편곡판을 만들었지만, 활로 현을 켜서 연주하는 [[현악기]]와 건반으로 현을 때려 연주하는 건반악기의 기술적인 차이점 때문에 너무 기계적이고 딱딱한 음악이 되었다고 그다지 만족스럽게 여기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 편곡판도 피아노 듀엣들이 종종 선곡해 연주/녹음하고 있다. 현악 4중주 편성에 [[콘트라베이스]]를 더해 대규모 현악 합주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는데, [[펠릭스 바인가르트너]]가 만든 편곡판이 많이 쓰인다. 바인가르트너 편곡판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오토 클렘페러]], [[칼 슈리히트]], [[피에르 몽퇴]],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지휘자들이 녹음을 남겼고, 지금도 수준급 현악 합주단이나 관현악단이 종종 연주/녹음하고 있다. 이외에도 현악 4중주나 현악 합주가 아닌 정규 편성 [[관현악단]]을 위한 편곡도 시도되고 있는데, 1999년에는 [[스페인]]의 작곡가 마누엘 이달고가 [[안톤 베베른|베베른]] 식의 점묘법 스타일 관현악 편곡으로 [[마개조]]한 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이 편곡판은 2009년에 [[오스트리아]]의 현대음악 전문 음반사 카이로스(Kairos)에서 나온 이달고 작품집 CD에도 로타 차그로세크가 지휘한 [[쾰른 서부독일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로 수록되었다. [[분류:합주곡]] [[분류: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작품]] 대 푸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