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he Clash ||http://www.billboard.com/files/styles/promo_650/public/media/the-clash-1978-650-430.jpg?width=350 ||http://ichef.bbci.co.uk/images/ic/944x531_b/p01dtdvl.jpg?width=350 || ||과거 [br] (왼쪽부터 니키 '토퍼' 히든, 믹 존스, 조 스트러머, 폴 시머넌)~~이 때가 [[1970년대]]라니~~||현재(왼쪽푸터 폴 시머넌, 니키 '토퍼' 히든, ?, 믹 존스. 조 스트러머는 2002년 타계하였다.|| > '''[[섹스 피스톨즈]]와 함께 영국 펑크의 신화이자 전설''' > '''[[펑크 록]]이 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후대에 큰 영향력을 끼친 밴드''' 영국출신의 [[펑크 록]]밴드. 영국의 펑크씬에서는 그 후배이지만[* 밴드 결성시기만 늦었다 뿐이지 조 스트러머는 이미 101'ers라는 펍 록 밴드를 이끌고 있었다. 이때는 정통 백인 R&B, 로큰롤 사운드를 표방했다] [[섹스 피스톨즈]]와 함께 양대산맥의 부류로 취급받을 정도로 이미 그들은 '''영국 펑크계의 전설'''이기도 하다.[* 실제로 섹스 피스톨즈가 앨범 1장으로 단명한데 비해 이들은 6개의 앨범과 다수의 EP로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섹스 피스톨즈가 "펑크란 이런것이다"를 보여줬다면, 클래쉬는 "펑크가 나아갈 길"을 보여준 셈.] 영국 펑크씬에서는 굉장히 저항적인 가사와 과격한 밴드로써도 유명하다. 조 스트러머(보컬), 믹 존스(기타), 테리 차임즈(드럼)[* Terry Chimes. 1집 앨범에 '토리 크라임즈(T'''o'''rry C'''r'''imes)로 표기되는 굴욕을 겪은 바 있다.(...)]', 폴 시모넌(베이스)의 4인조로 결성되었다.[* 초기에는 기타가 3명(!)이었다. 키쓰 리바인이 있었는데, 몇가지 문제로 탈퇴했다. 키쓰 리바인은 훗날 쟈니 로튼의 포스트펑크 밴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 약칭 PIL)에 참여한다.] 1집을 발매한 뒤에 테리 차임즈가 탈퇴하고 니키 히든이 드러머로 가입한다. 탄생 배경만 [[섹스 피스톨즈]]와 같은 연장선상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클래시의 출발 자체가 [[섹스 피스톨즈]]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리더인 조 스트러머가 런던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을 구경하고 그만 ‘감동하여’ 펑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그때까지 몸담고 있던 퍼브록 밴드 101'ers를 탈퇴하여 믹 존스[* 당시 미대생이었던 폴 시머넌과 London SS[[슈츠슈타펠|(...)]]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었다. 믹 존스에게서 이미 밴드 가입 제안("니 목소리랑 기타치는건 참 좋은데, 니 밴드는 구려."가 믹 존스가 조 스트러머에게 한 제안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초면에...)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고 나서 섹스피스톨즈 공연을 본 뒤 큰 충격을 받고 101'ers를 때려 치우고 믹 존스를 찾아간다.]와 함께 클래시를 결성했다. 그리고 1976년 12월에는 [[섹스 피스톨즈]]의 ‘대영제국의 무정부 상태’ 순회공연에 오프닝으로 참가, 펑크 물결 확산에 나섰다. [[섹스 피스톨즈]]의 바톤을 이어잡았으나 단순한 워너비 피스톨즈를 넘어 본인들만의 오리지너리티를 가졌으며, 현재는 [[섹스 피스톨즈]]와 동격으로 대우 받을 정도. 혹자는 [[섹스 피스톨즈]]가 무정부주의에만 그쳤던 펑크씬의 정신을 선동적인 가사와 과격한 사운드로 저항정신을 내뿜었다는 것으로 영국 펑크씬의 발전형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한다. DIY정신에만 입각하여 단순한 구조만을 고집했던 [[섹스 피스톨즈]]와 달리, 프로그래시브한 구조나, 헤비메탈을 연상시킬 정도의 강력한 사운드, 심지어는 [[레게]]리듬까지 도입하는 등 [[펑크 록]]의 음악적 저변을 엄청나게 확장시킨 밴드이다.[* "조 스트러머는 위대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에 레게를 가르쳤다" - 존 라이든(쟈니 로튼). 1978년 일본 뮤직라인과의 인터뷰에서] [* 이 때문에 펑크 록을 음악성없다고 까는 평론가들도 더 클래시는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사실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에 각설탕 하나를 타면 이들의 음악이 된다. 물론 느끼하다는게 아니라 감미롭다라는 뜻에서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안 되는것이''', 애초부터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쉬의 음악적 기반이 다르다. 섹스 피스톨즈는 호크윈드Hawkwind[* 모터헤드의 레미(!)가 참여했던 전설적인 글램/하드록 밴드이다.]나 씬 리지Thin Lizzy의 영향을 받은 데다가, 하드록의 영향이 강했다. 스티브 존스는 글램록부터 하드록까지 다양한 음악의 영향을 받았고[* 이래놓고 잡지 인터뷰에서는 영향받은 뮤지션에 대해 "모르겠다... 집에 레코드 플레이어가 없어서 음악을 별로 안 들었다..."라고 했다. --쿨가이--], 쟈니 로튼은 심지어 캔이나 캡틴 비프하트같은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도 즐겨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클래쉬는 애초부터 믹 존스는 미국 남부 리듬 앤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었고, 조 스트러머는 포크와 백인 R&B[* 초기 롤링스톤즈와 트래픽, 50년대 초중반의 대니 앤 더 주니어스가 이에 해당한다. --보이즈 투 멘 같은 흑형사운드가 아님--] 의 영향을 받았다. 뿌리부터가 다른 것이다. --섹피와는 다르다 섹피와는-- 지금도 그들의 저항정신을 그대로 담아 수많은 밴드가 그들을 동경하고 펑크계로 뛰어들기도 했다. [[리버틴즈]]가 대표적인 경우다.[* 믹 존스는 이들의 1집앨범 [[Up the Bracket]]을 프로듀스 하기도 하였다.] 1986년 믹 존스와 조 스트러머의 불화로 해산을 맞았으나 2년 후 다시 화해를 하고 현재도 함께 작품 활동을 하기도 하고, 공연을 하는 등 활동을 하고있다.[* 이 시기 조 스트러머는 믹 존스 없이 클래쉬를 건사하며 Cut the Crap이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그러나 이 앨범은 '''사운드가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당시 클래쉬 팬들에게서 클래쉬 앨범으로 안 쳐주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지못미-- 요즘에는 조금씩 재조명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같은 시기, 믹 존스는 레게 디제이이자 초기 펑크 확산 및 레게-펑크 하이브리드의 혁혁한 공을 세운 돈 레츠같은 디제이--흑형--과 Big Audio Dynamite를 결성한다. 근데.. 평가가 막장에서 압권까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이유는 완전히 랩과 댄스뮤직으로 선회했기 때문에.--클래쉬 후기에서 이런 조짐이 보이긴 했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멀리갔다 싶다--] 2002년 조 스트러머가 심장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최근에는 폴 시머넌이 [[블러(밴드)|블러]]의 [[데이먼 알반]]과 The good, the bad and the queen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믹 존스도 고릴라즈의 라이브 세션에 참가하고 데이먼 알반이 클래시의 노래를 커버하는 것을 볼때 친분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두 밴드를 매니지먼트하는 회사가 같다.] 참고로 시머넌은 뮤지션인데 지나치게 잘생겨서 클래시 활동당시 별명이 '런던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 '미스터 핸섬'이었다. 미술에도 재능이 있어 화가로도 활동했다.--몰빵-- 아들이 둘 있는데 역시 대단한 미남들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밴드 중 이들의 음반을 국내 밴드 [[크래쉬]]의 음반인 줄 알고 사서 들었다가 펑크 밴드를 하기로 마음먹은 밴드도 있다고 한다. 영화 007 시리즈 [[어나더데이]]에서 'London Calling'이 삽입곡으로 쓰였다. [[제임스 본드]]가 쿠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장면과 악당 [[구스타프 글레이브스]]가 기사작위를 받기위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에 나온다. 영화 [[아이언맨]] 2편에서 이들의 곡인 'Should I Stay Or Should I Go'가 쓰이기도 했다. [[토니 스타크]]가 차고에서 작업하는 장면. 비디오 게임 [[파 크라이 4]]가 똑같은 곡을 오프닝과 트레일러에 쓰기도 했다. 참고로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나오는 [[스탠드(죠죠의 기묘한 모험)|스탠드]] [[클래시(죠죠의 기묘한 모험)|클래시]]는 여기서 모티브를 따 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2TYKmQc0L4|초기 대표곡 White Riot]][* 클래쉬 멤버들은 1976년의 [[노팅 힐 폭동]]에 어쩌다 참여했었는데, 그때 조 스트러머가 든 생각은 '''흑횽들은 이렇게 열받으면 폭동도 일으키고 그러는데 백인들은 찌질하게 아무것도 안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사가 섬뜩하다. "모든 권력은 돈있는 놈들에게 있고 거리에 쏘다니는 우리는 가진게 없네. 난 백인들의 폭동을 원한다!" [[ㅎㄷㄷ]] ] [[https://www.youtube.com/watch?v=EfK-WX2pa8c|대표곡 London Calling]][* 한국 밴드인 [[크라잉 넛]]이 'OK목장의 젓소' 앨범에서 '명동콜링'이라는 곡을 넣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도바츠텐이라는 밴드는 [[노동 CALLING]]이라는 곡을 이 곡의 제목에서 차용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BN1WwnEDWAM|또다른 대표곡 Should I Stay Or Should I Go]]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070100209205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07-01&officeId=00020&pageNo=5&printNo=17151&publishType=00020|심지어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한국에 보도가 됐을 정도의 파급력]] [각주] [[분류:영국의 록밴드]] 더 클래시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