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항목 : [[영화 감독/목록]] ||||<table align=center><table width=535><#ffffff>[[파일:데이비드 린치.jpg|width=100%]]|| ||<:><#0d0d0d>'''{{{#white 이름}}}'''||<#ffffff>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 ||<:><#0d0d0d>'''{{{#white 본명}}}'''||<#ffffff>데이비드 키스 린치 (David Keith Lynch)|| ||<:><#0d0d0d>'''{{{#white 국적}}}'''||<#ffffff>[[미국]]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a/a4/Flag_of_the_United_States.svg/188px-Flag_of_the_United_States.svg.png?width=28|| ||<:><#0d0d0d>'''{{{#white 출생}}}'''||<#ffffff>[[1946년]] [[1월 20일]], [[몬타나|몬타나 주]] 미줄러|| ||<:><#0d0d0d>'''{{{#white 거주}}}'''||<#ffffff>[[캘리포니아|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0d0d0d>'''{{{#white 학력}}}'''||<#ffffff>펜실베니아 미술학교|| ||<:><#0d0d0d>'''{{{#white 직업}}}'''||<#ffffff>[[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화가]], [[음악가]]|| ||<:><#0d0d0d>'''{{{#white 활동}}}'''||<#ffffff>[[1966년|1966년 – ]][[현재]]|| ||<:><#0d0d0d>'''{{{#white 조직}}}'''||<#ffffff>데이비드 린치 재단, 초월 명상법|| ||<:><#0d0d0d>'''{{{#white 위원}}}'''||<#ffffff>데이비드 린치 재단|| ||<:><#0d0d0d>'''{{{#white 배우자}}}'''||<#ffffff>페기 렌츠 (1967 ~ 1974)[br]메리 피스크 (1977 ~ 1987)[br]메리 스위니 (2006 ~ 2006)[br]에밀리 스토플 (2009 ~ )|| ||<:><#0d0d0d>'''{{{#white 링크}}}'''||<#ffffff>[[https://twitter.com/david_lynch| https://g.twimg.com/Twitter_logo_blue.png?width=24]] [[https://www.facebook.com/davidlynchofficial/| http://www.freelargeimages.com/wp-content/uploads/2015/05/Facebook_Vector_Logo_Hd_02.png?width=24]]|| [목차] == 소개 == [[미국]]의 [[영화 감독]]. 일명 [[컬트]]의 귀재. 가끔 이름이 같은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데이비드 핀처]]와 묶여 언급된다. 이 셋 중에서 가장 난해한 영화를 만든다. 크로넌버그 감독은 《[[폭력의 역사]]》 dvd 코멘터리에서 "나의 영화는 린치처럼 어렵지 않다."라고 말할 정도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movie2&no=4347024|감독이 변태라 난해하다 카더라]]-- [[몬태나]] 주 미줄라에서 태어나 미술을 전공했으며, 1966년 〈6명의 아픈 사람들(Six Figures Getting Sick)〉이라는 단편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77년 첫 장편영화 <이레이저헤드 ''Eraserhead''>를 만들었으나 제대로 개봉도 하지 못했다. 내용도 난해하고 굉장히 기분 나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극장주의 눈에 들어 심야영화로 장기상영하게 되고,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 때부터 그는 컬트의 귀재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이레이저헤드는 제작비가 부족해서 [[1972년]]부터 5년간 '''[[알바]]를 뛰면서''' 만들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빨간방>에서 주인공이 자기 집의 문을 열고 닫는 장면을 만드는데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언급한다. 주인공을 맡은 잭 낸스(1943~1996)는 미스터리하게 [[http://today.movie.naver.com/today/today.nhn?newSectionCode=SPECIAL_REPORT§ionId=1801|죽었다. 이후 전설적인 코미디언인 [[멜 브룩스]] 눈에 띈다. 브룩스가 제작하고 린치가 감독한 두 번째 장편영화 <[[엘리펀트 맨]] ''Elephant Man''>는 1980년에 개봉한다. [[조셉 메릭]]이라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로, 작품상을 포함,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에 지명된다. 그러나 전부 '''수상실패.''' 1983년 [[조지 루카스]]가 [[제다이의 귀환]] 감독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1984년 [[프랭크 허버트]]의 [[듄]](한국어 제목은 <사구>)을 동명영화로 제작한다. 그러나 제작자의 과도한 편집으로 [[시망]]. 원래 4시간 분량이었으나 2시간으로 절반이 잘리고 엉망이 되었다. 원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연출하려고 하는데, 런닝타임을 16시간으로 만들고 [[살바도르 달리]]까지 출연시킨다는 말도 안되는 계획 때문에 '''당연히''' 린치에게 넘어갔다. 1986년 같은 제작자의 투자를 받아 <[[블루 벨벳]] ''Blue Velvet''>이라는 영화를 만든다. 전작과 달리 흥행에 성공하고 그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도 4시간 분량에서 2시간으로 편집이 되었다. DVD가 출시될 전까지는 삭제 장면들이 폐기되었다고 알려져 10분 정도 분량의 추가 편집본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5주년 기념 블루레이가 발매되면서 50분 이상의 삭제 장면이 추가되었다. 국내에는 미출시. 1990년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를 만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모티브로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이다. 그 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기묘하게도 린치는 자신만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추구한다면서 정작 영화 속 수많은 상징들은 전부 〈[[오즈의 마법사]]〉에서 가져왔다. ~~이것은 앨리스와 도로시의 신개념 융합~~ 같은 해에 린치는 TV용 드라마인 '''[[트윈 픽스]]'''를 제작했다. 미스터리 수사극으로, 조용한 시골 마을의 [[아이돌]]격인 소녀가 시체로 발견되고 [[FBI]] 수사관이 파견되면서 마을과 주민들의 [[흑역사]]가 드러나는 내용이다. 시즌2로 막을 내렸고 1년 뒤 극장판도 나왔다. 1997년 <로스트 하이웨이 ''The Lost Highway''>를 만든다. 지금까지도 씨네필 사이에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영화이며, 가장 난해하다.[* 박찬욱도 자기 책에서 대놓고 깐 적 있다.] 이 영화로 린치의 전성기 1부는 막을 내린다. 다만 OST는 대 호평. [[스매싱 펌킨즈]], [[나인 인치 네일스]], [[마릴린 맨슨]], [[데이비드 보위]], [[매거진]]의 [[배리 애덤스]], [[람슈타인]] 같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1999년 <스트레이트 스토리 ''The Straight Story''>를 만든다. 위독한 형을 보기 위해 [[트랙터]]를 타고 미 대륙을 횡단한 어느 노인의 실화를 각색했다. 어둡고 음산했던 전작들과 달리 밝고 감동적인 내용의 영화[* [[이우일]]은 만화로 이게 과연 밝고 감동적인거냐며 역시 린치답다는 평을 내렸다. 더불어 국내 개봉판 포스터에 나온 [[월트 디즈니]]가 드리는 올겨울 최고의 선물이란 문구 글을 보고 참 엿같네라고 만화로 깠다.]였다. 린치가 이런 영화까지도 만들 수 있냐며 비평가들과 영화팬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겉으론 밝고 감동적이면서도 속을 보면 현실 속 어두움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 영화로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노배우 [[리처드 판스워스]]는 그 이듬해 엽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했다. 자살의 이유는 [[암]]으로 인한 고통 때문이라고. 2001년 TV 드라마 파일럿을 하나 제작했으나 외면당했다. 그 때 [[프랑스]]의 어느 영화제작사가 자금을 지원해서 40분 가량을 덧붙여 영화로 완성했으니, 그 이름은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 이 영화로 그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다시 마니아들을 열광에 몰아넣는다. 2006년 <인랜드 엠파이어 ''Inland Empire''>을 만들었다.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사실 [[로라 던]](여배우, <광란의 사랑>의 여주인공)이 린치의 옆집으로 이사 왔는데, 둘이 우연히 만나서 수다 떨다 디지털 캠코더[* 기종은 소니의 PD-150]로 짧은 동영상 몇 편을 찍기로 했고,[* 린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만들 때까지도 디지털 영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디지털 캠코더를 접해보고 디지털 영화 촬영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렇게 찍고 놀던 중 린치는 이것을 영화로 개봉하기로 결심하고 단편들을 모은 다음 몇몇 장면을 추가로 찍어 내놓은 것이다(...). 심지어 제목도 던과 수다떨다 나온 LA의 지역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영화도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았다. 2008년 칸 영화제에서 특별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 ''Chacun son Cinema''>의 한 편을 제작했으며, 그 해 칸 영화제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린치는 명상을 매우 좋아하며, 자신이 쓴 책 <데이비드 린치의 빨간 방>에서 자신이 명상에 빠지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명상교육 보급을 위한 자기 이름을 건 재단도 운영 중이다. 커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유기농 커피를 팔고 있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pRFJNpAff_A|어떤 팬이 만든 커피 광고]] 최근에는 가수 모비(Moby)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모비가 린치 광팬인데 안 쓴 필름 Footage라도 보내주십사하고 타진했는데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모비가 ~~광분을 하며~~ 떡실신했다고 한다. 6년째 장편영화가 안나오고 있는데 [[http://dvdprime.donga.com/bbs/view.asp?major=MD&minor=D1&master_id=22&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0&SearchCondition=1&SearchConditionTxt=%B5%A5%C0%CC%BA%F8+%B8%B0%C4%A1&bbslist_id=2140064&page=1|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단편 영화와 음반을 내는 중. 2013년 7월 8일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 나왔는데 노래가... [[http://www.youtube.com/watch?v=6tTDxSdudNM|오진다.]] ~~요즘 젊은 애들보다 영감님들이 더 익스페리멘탈해요.~~ 2016년, [[트윈 픽스]] 새 시즌을 제작할 [[http://dvdprime.donga.com/bbs/view.asp?major=MD&minor=D1&master_id=22&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0&SearchCondition=1&SearchConditionTxt=%C6%AE%C0%A9+%C7%C8%BD%BA&bbslist_id=2515112&page=1|예정이다.]] DVD나 블루레이가 나올때 챕터 구분 기능이 없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정확히는 감독이 관여한 블루레이나 DVD에만 없다. 전처였던 화가 페기 린치의 사이에 낳은 딸 제니퍼 챔버스 린치가 있다. 딸도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페데리코 펠리니]]와 생일이 같다, 그가 죽기 전에 병문안을 간 적이 있기도 하다. 《[[캐리]]》에 출연한 시시 스페이섹과 그의 남편인 미술 감독 잭 피스크와 친구다. 첫 작품인 이레이저헤드를 후원하기도 했으며, 피부가 심각하게 손상된 사람(대본상에서는 한 행성에 사는 남자)로 나온다. [[분류:영화 감독]] [[분류:1946년 출생]] 데이비드 린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