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align=righ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6/Raffaello_Sanzio.jpg?width=300 || ||<:> 자화상, 라파엘로 산치오, 1504~1506년, 목판에 [[유채]],[br]47.5 × 33cm,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 [목차] 라파엘로 산치오 산티 (Raffaello Sanzio Santi)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 [[1483년]] [[4월 6일]] - [[1520년]] [[4월 6일]] == 개요 == '''[[다 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 흔히 이야기하는 [[르네상스]] 3대 거장''' == 일생 == [[네임밸류]]에 걸맞지 않게 ~~[[닌자 거북이]]로 묶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 비해 2014년까지 항목 작성이 되지 않았었다. ~~일반인에게는 [[닌자 거북이]]멤버로만 알려졌고 미술가로서 인지도가 뒤지는~~ [[도나텔로]]마저 항목이 작성되어 있었는데...안습.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의 범인들과는 거리가 있는 독특한 성격과는 달리, 라파엘로는 그의 작품들처럼 부드럽고 온화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우르비노 공국 출생. 아버지도 우르비노의 궁정화가였다. 10대 초반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1499년 [[페루지아]]에서 페루지노에게 배웠다. 1500년부터 그림을 의뢰받기 시작하였고, 1504년부터 [[피렌체]]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많은 [[성모]][[예수|자]] 성화와 초상을 그렸다. 1508년 로마로 건너갔다. [[교황]] 및 [[가톨릭교회]]의 의뢰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르네상스의 절정을 이룬 화가답게 그의 그림은 고전주의의 완성이다. 우아함 그 자체. [[바티칸]] 뿐 아니라 유럽 여행을 하며 여느 유명한 미술관을 가더라도 라파엘의 작품은 꼭 확보해두고 있다. == 작품 == http://www.artinvest2000.com/raffaello/raphael_joanna-aragon.jpg?width=50% '아라곤 부인의 초상' http://www.wga.hu/art/r/raphael/5roma/5/07baptis.jpg?width=50% '광야의 [[세례자 요한]]'[* [[마태오 복음서]] 3장 1-12절, [[마르코 복음서]] 1장 1-8절, [[루카 복음서]] 3장 1-18절, [[요한 복음서]] 1장 19-28절] http://www.artinvest2000.com/raffaello/raphael_madonna-sedia.jpg?width=50% '의자에 앉은 [[성모]]' http://www.artinvest2000.com/raffaello_madonna-cardellino.jpg?width=50% '검은 방울새의 [[성모]]' http://www.artinvest2000.com/raffaello/raphael_sistine-madonna.jpg?width=50%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2명의 아기 [[천사]]가 그림 아래에 보인다. '시스티나의 [[성모]]'. http://www.artinvest2000.com/raphael_juliusII.jpg?width=50% '[[교황]] [[율리오 2세]]의 초상'. 윗 그림인 <시스티나의 성모>를 의뢰한 교황이다. http://www.artinvest2000.com/raffaello-trasfigurazione.jpg?width=50% '[[예수|그리스도]]의 변모'[* [[마태오 복음서]] 17장 1-9절, [[마르코 복음서]] 9장 2-10절, [[루카 복음서]] 9장 28-36절] http://uploads6.wikiart.org/images/raphael/school-of-athens-detail-from-right-hand-side-showing-diogenes-on-the-steps-and-euclid-1511.jpg!Large.jpg?width=60% 서명의 방의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a/13_Estancia_de_Heliodoro_%28Liberaci%C3%B3n_de_San_Pedro%29.jpg/800px-13_Estancia_de_Heliodoro_%28Liberaci%C3%B3n_de_San_Pedro%29.jpg?width=60% '[[베드로]]의 해방 (Liberación de San Pedro)'. 엘리오도로의 방에 있다. ~~[[아테네 학당]]만 보고 쓱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때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에 참여해 성당의 평면을 그리스 십자가에서 라틴 십자가로 바꿨다. == 여담 == 자화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한 미남으로 당시 여성들의 인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유약하고 모성애를 자극하는 외모와는 별개로 그는 여색을 매우 밝혔다고 하는데 오죽하면 당대 건축가인 바사리는 자신의 저서 <미술사 열전>에서 연애의 열병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게 아닐까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사후 그의 유해는 [[로마]] [[판테온]]에 안치되었다. 죽을때까지 [[독신]]이었는데, 무려 12년을 동거한 여인이 있으니 마르게리타 루티라는 여인으로, '라 포르나리나'(제빵사네 딸)이라는 별칭을 가진 사람이었다. 많은 작품의 [[성모 마리아]] 모델은 그녀가 한 것으로 추정. 사랑하면서도 당시 세간의 비난을 받으면서 동거 관계만을 유지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당시 라파엘로는 무려 '''메디치 비비에나 [[추기경]]의 딸'''과 결혼이 주선되어 있었기 때문. (라파엘로는 괴팍한 나머지 둘 과 달리 고위층의 마음에 쏙 들었는지 그 스스로도 추기경 자리에 추천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감히 높으신 분인 추기경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기보다 훨씬 미천한 제빵사 집 딸과 결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낼 수도 없었던 그는 따라서 결혼 약속은 잡아놓고도 결혼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미혼으로 버틴 것이다. 그 외에 희대의 천재 화가인 [[피카소]]가 8살 때 본인은 라파엘로보다 그림을 잘 그렸다는 드립의 희생양이 되었다(...) 유로화 이전 [[이탈리아 리라|이탈리아 50만 리라]]의 주인공이 되었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503021013261&code=920301|기사 보기]] == 매체에서의 출연 == * [[핑크레이디 클래식]] : 미남이었다는 설정을 반영하여, 상당한 미형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재수없는 자뻑 기믹이 추가되었다(...) * [[화관의 마돈나]] :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존경하여 그에게 그림을 배우러 가던 중 남장한 레오노라와 잠깐 안면을 트기도 한다. 여기서도 자뻑 기믹이 추가되어서, 자기 이름을 들어본 적 없냐는 질문에 레오노라가 모른다고 답하자 '촌놈이군'이라며 혼잣말을 한다. * [[냉정과 열정 사이]] : 설정상 남자 주인공 준세이랑 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딱히 라파엘로와는 닮지 않은 [[타케노우치 유타카]]가 준세이 역을 맡았지만 타케노우치 유타카 자체가 상당한 미남이기 때문에... ~~[[진혜림|여]][[시노하라 료코|캐]]들의 [[미스캐스팅]]에 비하면 만족할만한 캐스팅이긴 하다~~ [[분류:화가]] [[분류:이탈리아의 인물]] 라파엘로 산치오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