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벨기에]]의 왕이자 [[콩고]]의 마왕을 찾으시려던 분은 [[레오폴드 2세]] 항목으로. ||||||||||||<tablealign=center> [[신성 로마 제국/역대 황제|역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 || [[요제프 2세]] ||←|| 레오폴트 2세 ||→|| [[프란츠 2세]]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a/Johann_Daniel_Donat%2C_Emperor_Leopold_II_in_the_Regalia_of_the_Golden_Fleece_%281806%29.png/250px-Johann_Daniel_Donat%2C_Emperor_Leopold_II_in_the_Regalia_of_the_Golden_Fleece_%281806%29.png [[1747년]] [[5월 5일]]~[[1792년]] [[3월 1일]] 재위: 1790~1792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본명은 페터 레오폴트 요제프. 첫 번째 [[세례명]]은 대부인 [[러시아]] 황제가 지어주었으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집안에서는 선호되지 않는 이름이어서 항상 '레오폴트'라 불렸다.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3남으로 태어났지만 차남이 일찍 죽은 덕에 사실상의 차남으로 대우받았다…지만 장자 중심으로 계승되는 왕실 입장에선 차남 이하는 그게 그거(…). [[카를로스 3세]]의 딸 마리아 루도비카와 결혼했고 1765년 아버지 프란츠 1세가 죽고 형 요제프 2세가 제위를 계승하자 아버지가 겸하고 있던 작위인 토스카나 대공을 잇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대리인만 보내고 한동안 방치된 토스카나 대공국을 발전시켰다. 하수도 정비 등의 공공사업을 수행했고 세제를 개선했으며 군대 양성 및 산업 부흥,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하였다. 레오폴트는 메디치 가가 남긴 구습을 철저하게 타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외적인 발전과는 별개로 주민들로부터는 외지인이라며 인기가 없었고 교회 개혁 과정에서 [[교황]] 세력과 충돌하기도 했다. 교회의 재산을 세속으로 가져오는 데 실패했으며 성직자들에 대한 법령 통제 역시 실패. [[가톨릭]] 세력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1786년 11월 사형제도를 폐지하기도 했다. 레오폴트 2세는 토스카나를 통치하기 위해서 비밀경찰을 창설해 활용했다. 형 요제프 2세가 아들을 낳지 못 했기에 그는 사실상 유력한 후계자가 되었다. 이 때문인지 요제프 2세가 레오폴트에게 섭정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거절했다. 1790년, [[요제프 2세|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빈으로 가 신성 로마 제국의 레오폴트 2세로 즉위했다. 그는 우선적으로 요제프 2세의 실정들을 만회했다. 형이 벌여놓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1790년 9월에 8개월 기간의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1791년에 시스토바 조약을 체결, 종식시켰고 [[프랑스 혁명]]을 이유로 [[프랑스]]와의 동맹을 파기했으며 [[플랑드르]]인들의 특권을 인정하여 [[네덜란드]] 지역을 진정시키고 각 지역의 의회 세력 또한 파트너로서 인정했다. 대내적으로는 온건책을 쓰며 혁명의 기운을 억제하는 데 주력했고, [[동맹의 역전]] 이래 적대관계였던 [[영국]]과 다시 동맹관계를 맺고 프랑스의 상황 변화에 주목했다. 중간에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가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어 프랑스를 침공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레오폴트 2세는 거부했다. 남은 [[폴란드]] 영토를 합병하고 오스만 제국과 싸우려는 예카테리나 2세의 생각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박하고 성실한 성품을 가졌고 대체로 형인 요제프 2세보다 나은 인재였다고 평가된다. 레오폴트는 막내 여동생 [[마리 앙투아네트]]와 만난 적도 많지 않았고 앙투아네트를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도움을 청했으나 레오폴트는 국왕 부처가 파리를 빠져나오면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당시 그는 영국과 프로이센 등의 대 프랑스 동맹국들과 함께 프랑스 혁명 정부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바렌느 배신사건|바렌느 도주 사건]]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체포되고 여동생과 처남이 처형될 움직임이 보이자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여동생이라도 구하기 위해 프랑스와 협상을 벌인다. 하지만 중도에 급사하는 바람에 협상 타결과 전쟁은 장남 [[프란츠 2세]]의 몫이 된다. [[분류: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