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이 문서는 [[동음이의어·다의어/ㄹ]] 항목입니다. [목차] = 실존하는 섬 = ||<tablealign=right>||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f/GR_Rhodes.PNG/200px-GR_Rhodes.PNG|| || [[그리스어]] || '''Ρόδος''' || || [[영어]] || '''Rhodes''' || || [[이탈리아어]] || '''Rodi''' || [[그리스]]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 그래도 면적 1400㎢로 [[제주도]]보다 다소 작은 정도]으로, [[도데카니사 제도]](Δωδεκάνησα)[* 열두 개의 섬이라는 뜻]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약 11만 5천 명으로, 북동쪽 끝에 있는 로도스 시에 인구의 절반 가까이 거주한다. 그리스 본토와는 363km 떨어져 있으며, 오히려 [[터키]] 본토와는 1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금문도]]?~~ 그리스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보이기 쉬운데, 그리스 국토의 최동단은 더 동쪽으로 떨어진 카스텔로리조(Καστελλόριζο) 섬(면적 12km)이다. == 역사 == === 고대 === 고대, 특히 [[헬레니즘]] 시대에 동지중해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작은 섬의 도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부와 군사력[* 해군과 투석병이 유명했다.]을 자랑했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로도스의 거상]](Colossus)이 세워진 것도 이 때이다.[* 마케도니아의 왕 폴리_오케르(공성자) 데메트리오스의 공격을 격퇴한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용병으로도 유명해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슬링]] 전문인 로도스섬 투석병은 지중해에서 최강의 이름을 자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통해 육성된다고 하는 이들 용병들에 대해 그리스의 군인이자 문필가 [[크세노폰]]은 자신이 쓴 책 <페르시아 원정기>에서 자신이 자랑하던 궁병들이 페르시아 장궁 사거리의 두 배 (최소 200m, 최대 300m 이상) 에 이르는 거리에서 날아오는 돌팔매질에 머리통이 깨져 나가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어떤 기록에는 '''그들이 날리는 탄은 공중에서 불이 붙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 이런 번성함 때문에 로도스 섬에는 각종 교육 및 연구 시설도 대거 들어섰고, 당대에 학문 분야에서 로도스 섬의 명성은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와 맞먹을 정도였다. 한 예로 로마에서 고위 귀족들이 자녀들을 가르치는 가정 교사의 출신을 따질 때 아테네 출신 다음으로 높이 평가한 부류가 로도스 섬 출신이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도 황제가 되기 전에는 한때 모든 공직을 내놓은 채[* 이에 대해서는 [[티베리우스]] 항목 참조.] 이 섬에 틀어박혀 7년을 은거한 적이 있다. 이후 [[고대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비잔티움 제국]] 시대까지 점차 쇠락하여 그저 그런 섬 중 하나가 되었다. === 중세~근대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6/Maltan_knights_castle_in_rh.jpg 구호기사단 단장의 궁전. 1930년대 이탈리아 통치기에 대대적으로 복구되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 후 14세기 경, 우트르메르에서 거점을 상실한 [[구호기사단]]이 와서 섬을 점령하여 거점으로 삼았다가 16세기 들어 [[오스만 제국]]의 도전을 받고 결국 [[술레이만 1세]]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 때 기사단이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오스만군을 격퇴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기사단은 [[신성 로마 제국]] [[카를 5세]]의 배려 덕분에 [[몰타]]로 건너가 정착했고 거기서도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았지만 거기서는 끝까지 버텼다. 아무래도 [[전투종족]]. 구호기사단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으며 건재하고 있다. 아무튼 16세기부터 1910년대까지는 별다른 사건 없이 쭉 오스만 영토였다. === 이탈리아 통치기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e/Offices_of_the_Prefecture_of_the_Dodecanese_02.jpg/640px-Offices_of_the_Prefecture_of_the_Dodecanese_02.jpg 총독 궁전. 지금은 로도스 현청으로 쓰인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로도스 섬이 속한 도데카니사 군도는 1912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의 결과 [[이탈리아]]에 점령당해 35년간 이탈리아 영토였다. 처음에는 ~~무단통치기~~ 군정(軍政)이 실시되다가, 1923년 에게해 이탈리아령 군도(Isole italiane dell'Egeo)라는 지역이 정식 출범하면서 로디 섬(Rodi)으로 불렸다. 초대 총독 마리오 라고(Mario Lago: 재임 1922~1936)는 자유주의적 정치가로, ~~문화통치기~~ 각 민족 공존 정책을 펼치는 한편 이탈리아인 거주자의 정착과 그리스인과의 결혼을 추진했다. 다만, 라고의 통치는 종교적인 면에 한해서는 불관용적이었는데, 정교회 세력을 억누르고 가톨릭 전례만을 인정했다. 반면, 후임 총독인 체자레 마리아 데 베키(Cesare Maria De Vecchi, 재임 1936~1940) 치하에서는 ~~민족말살정책~~ 이탈리아어가 필수과목이 되었고 그리스어는 선택과목으로 전락하는 등, 섬의 이탈리아화(化)가 강경하게 추진되었다. [[무솔리니]] 정권이 섬의 도로를 정비하고 파시스트식 건축물들을 세우는 데 공을 들인 것도 이 때였다. 당시의 건축물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리스 침공]] 및 [[크레타 섬 전투]]의 전초기지가 되었다가,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한 뒤에는 [[나치 독일]]군의 점령하에 있었다.(명목상으로는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령) 이탈리아가 패전하고 모든 해외식민지를 포기한 1947년에서야 그리스에 반환되었다. 8천 명 가까이 되던 이탈리아계 정착민들은 본국으로 되돌아가거나, 그리스에 동화되었다. == 이 섬에 있는 도시 == Ρόδος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6/Dimos_Rodou.png/315px-Dimos_Rodou.png 로도스 섬 북동쪽 끝에 있는 [[그리스]]의 도시. 도데카니사 현의 현청 소재지이며 면적은 19.48㎢. 인구는 49,541명 (2011) = 가공의 섬 = [[파일:attachment/lodossmap.jpg]] [[판타지 소설]] 《[[로도스도 전기]]》 및 《[[로도스도 전설]]》의 주무대가 되는, [[포세리아]] 세계관의 섬. [[아레크라스트 대륙]] 남쪽에 위치해 있다. 위의 실존 로도스 섬은 로마자 표기가 Rhodes 이지만, 이 가상의 섬은 Lodoss 라고 쓴다. 섬의 기원으로 전해져 내려져오는 불길한 전설[* [[마파]] 항목 참조.]과 마물이 쉽게 번성하는 환경 때문에[* 사신 카디스가 로도스(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모)에 봉인되어 있기 때문. 카디스의 사기(邪氣) 탓에 로도스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마물이 창궐하기 쉬운 곳이 됐다.], 외지인(外地人)들은 이곳을 저주받은 섬이라고 부른다. 훗날에는 해방의 섬이라고 불리게 된다. 마법왕국 카스툴 말기에는 포세리아 대다수의 지역들이 그랬듯이, 카스툴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태수를 비롯한 카스툴의 귀족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로도스 태수가 거주했다는 "호상도시 쿠드"나 [[마신왕]]이 봉인된 "[[가장 깊은 미궁]]", [[플레임]] 전역을 뒤덮은 "바람과 불꽃의 사막" 등도 모두 이 시대의 산물이다. 여담이지만 아레크라스트에서도 단 두 명밖에 없다는(대현자 [[마나 라이]], [[드루이드]]의 장로 [[로우라스]]) 초영웅이 로도스에는 10명도 넘게 있다.(...) ~~전쟁이 영웅을 만듭니다?~~ [[분류:유럽의 섬]] 로도스 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