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Laurent Schwartz [* 주의: 코시-슈바르츠 부등식의 헤르만 슈바르츠(Hermann Schwarz, 1843-1921)과 구분할 것.] [[로랑]] 슈바르츠 [[파일:attachment/로랑 슈바르츠/Laurent_Schwartz2.jpg]] 로랑 슈바르츠는 [[프랑스]]의 [[수학자]]이다. [[1915년]] [[3월 5일]] 프랑스 [[파리(도시)|파리]]의 [[유태교]] [[랍비]]의 가정에서 태어나 [[2002년]] [[7월 4일]] 파리에서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무슨이유인지 [[네이버]]의 두산백과에는 몰년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2012년]]을 기준으로 사망한지 10년이나 지났는데?~~정말로 뇌가 입원해버렸나~~ 수학자 J.S. 아다마르의 [[생질]](누이의 아들)이며 친척중에 수학자가 많다. 유대인이었던 이유로, 제2차 세계 대전중에는 여러가지의 가명을 사용하였는데, 그것들 중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로랑 셀리마르탱(Laurent Sélimartin)이었다. 분포이론을 통해 [[미분]]개념을 확장하여 이후에 측도이론과 적분개념의 확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해석학]]과 분포이론의 밀접한 관련성을 입증하였다. 종전의 해석학은 [[연속함수]]를 분포이론은 이산함수를 주로 다루었다. 주요저서에 '분포 이론 Théorie des distributions'(1950∼1951)이 있다. 1950년 필즈상을 수상했다. 그 후에도 핵구조의 이론과 무한차원적분의 이론 등 현재 프랑스 함수해석의 중심 인물이다. 나비 수집가로도 유명하며 정치적 활동으로도 주목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에 참가, [[트로츠키]]의 사상을 따랐으며 전후 프랑스 반체제운동의 중심인물이였다. [[알제리 전쟁]] 때에는 [[장 폴 사르트르]] 등과 함께 100인 위원회를 조직하여 민족 자립을 지지하고 [[베트남 전쟁]]시에는 [[버트런드 러셀]] 등과 함께 전쟁범죄 국제법정을 열기도 했다. 그의 분포이론을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함수의 범위를 아주 크게 확장해 모든 함수에 대해 미분이라는 조작을 허용한 것이다. 일반적인 함수 f는 폐구간에서 정의된 매끈한 함수(smooth function) g에 대해 f -> ∫fg 의 값을 주는 (함수공간)->([[실수]])의 함수로, 즉 함수공간의 쌍대공간(dual space)의 원소로 생각될 수 있다. 이제 분포(distribution)를 이 쌍대공간의 임의의 원소로 정의하면, 임의의 분포에 대해 '미분'이라는 조작을 정의할 수 있다. [* 정확히는 부분적분 공식 ∫(f')g = -∫f(g') 에서 착안하여, 분포 g의 미분을 f -> -∫(f')g 로 정의하게 된다.] 이러면 불연속함수의 미분을 분포로서 항상 정의할 수 있을 뿐더러, 디랙 델타(Dirac delta)[* 원점이 아닌 모든 곳에서 0의 값을 갖지만 원점에서 무한한 값을 지녀, 적분하면 1이 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일반적 함수의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 없다.] 같은 괴상한 대상들을 이 불연속함수의 미분[* 정확히는 음수일 때 0, 양수일 때 1의 값을 갖는 계단함수의 미분]으로 해석하여 해석학의 분석범위에 넣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도 학생으로는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자크루이 리옹(Jacques-Louis Lions), 질 피지에(Gilles Pisier)가 있다. [[분류:수학자]] 로랑 슈바르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