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static.guim.co.uk/sys-images/Guardian/About/General/2011/11/28/1322511178698/Robert-Enke-007.jpg http://i1295.photobucket.com/albums/b638/Ladya_C_Maxine/Enkelara3.jpg '''생전 딸 라라와 함께''' || 이름 || 로베르트 엔케 (Robert Enke) || || 생년월일 || [[1977년]] [[8월 24일]] || || 사망 || [[2009년]] [[11월 10일]] (32세) || || 국적 || [[독일]] || || 출신지 || 튀링겐 주 예나 || || 포지션 || [[골키퍼]] || || 신체조건 || 186cm, 84kg || || 등번호 || 1번 || || 유소년팀 || BSG 예나파름 (1985) [br] FC 카를 차이스 예나 (1986~1995) || || 소속팀 || FC 카를 차이스 예나 (1995~1996) [br]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6~1999) [br] [[SL 벤피카]] (1999~2002) [br] [[FC 바르셀로나]] (2002~2004) [br] [[페네르바흐체 SK]](임대) (2003) [br] CD 테네리페(임대) (2004) [br] [[하노버 96]] (2004~2009) || || 국가대표 || 8경기 / 0골 || >'''나는 이 상황을 도저히...믿을 수가...(없다)''' >- '''[[미하엘 발락]], 엔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나서''' [목차] == 소개 == '''축구 역사상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비운의 선수''' 독일의 전 축구선수. 1977년 8월 24일생. 포지션은 골키퍼.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뒤늦게 그 진가를 인정받은 대기만성형 선수. 뛰어난 골키퍼가 유난히 많이 배출된 독일 내에서도 [[올리버 칸]], [[옌스 레만]]의 뒤를 잇는 차기 독일 국가대표 골키퍼 유망주로 불리고 있었으며 인품도 매우 훌륭했다고 한다. == 경력 == 10대 후반부터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축구선수로서의 인생을 시작했고, 이후 21세 때 포르투갈 [[SL 벤피카]]로 이적,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2002년도 [[FC 바르셀로나]] 이적 후에는 바르샤의 제1 골키퍼로서 많은 경기에서 활약했으나, 이후 바르샤의 또다른 골키퍼 발데스와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복잡한 입장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한 선수가 지속적으로 골키퍼를 맡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가면서 골키퍼를 보는 특이한 로테이션이 있었다.] 이 당시 약체팀들과의 경기에서 3실점을 기록, 스페인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기에 이르렀고 그는 결국 주전경쟁에서 밀려 벤치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한 엔케는 다음해 [[페네르바흐체 SK]]로 옮겨갔지만 이적 후 첫경기에서 또 3실점을 기록하는 바람에 사실상 이름만 남은 선수로 전락했고, 2부 리그로 밀려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심한 좌절감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린 끝에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이후 이런저런 악재를 이겨내고 다시 1부 리그로 복귀, 2004년 [[하노버 96]]으로 이전하여 2009년까지 주전으로 활약해 왔다. 하지만 희귀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딸]] 라라가 두 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딸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우울증이 극심해졌다. 축구팬들은 엔케가 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흔들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이런 팬들의 걱정을 불식시키듯 그는 뛰어난 경기력을 발휘했다. 그런 엔케를 본 구단주와 감독은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드디어 2007년, 평소 엔케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요아힘 뢰프]]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마크를 달게 되었다. '''그러나...''' === 사망 === '''2009년 11월 10일, 엔케는 [[하노버]] 인근의 철로 건널목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투신자살|몸을 던지며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동안 언론에는 엔케가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 그는 지속적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또한 라라를 잃은 뒤 [[입양]]해 온 딸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독일의 입양제한법 규정상 우울증 환자에게는 입양이 허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의 우울증 치료 사실을 철저히 숨겨왔다고 한다. == 사후 == 당시 엔케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독일 전역은 큰 충격에 휘말렸다. 그가 생전에 뛰었던 하노버의 홈 구장인 AWD 아레나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팀 동료들뿐 아니라 수많은 축구팬들이 몰려와 그를 애도했다. [[파일:attachment/papakommt.jpg]] 라라 무덤에 남긴 마지막 글. '''Lara, Papa kommt. (라라야, 아빠가 간다.)''' 훗날 엔케가 자살하기 바로 전날 딸의 [[무덤]]에 남긴 'Lara, papa kommt(라라야, 아빠가 간다)'라는 글도 함께 알려지면서 많은 축구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http://sportbild.bild.de/SPORT/Fotogalerien/fussball/nationalmannschaft/trauer-um-robert-enke/trikot-auf-bank__14064341__MBQF-1258576789,templateId=renderScaled,property=Bild,height=349.jpg 이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경기 중 독일 대표팀의 벤치에 등번호 1번이 새겨진 엔케의 유니폼이 놓여 있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09년 11월 18일에 열린 독일과 코트디부아르의 평가전 때도 20년지기 친구인 발락이 직접 엔케의 마지막 경기 유니폼을 가져와 벤치에 두었다.] 이 유니폼에 얽힌 사연도 함께 드러나게 되어 다시금 큰 관심을 모았다. 하노버 96의 홈구장인 HDI 아레나 바로 앞에있는 엔케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 [[분류:축구선수]] [각주] 로베르트 엔케 문서로 돌아갑니다.